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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주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어제 동갑내기 친구에게 카카오톡을 통해 아기 선물로 책을 보냈다.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연락한 적 없는 친구인데 선물을 보냈더니 너무 고마워했다. 그러더니 자기도 나한테 선물을 하나 보내는 것이다. 예쁜 조명이었다. 

"난 정말 괜찮아! 쌍둥이 아기들 과자 하나 더 사주자. 진짜 진짜 괜찮아 얼른 선물 취소해~ 아빠,엄마 이번주에 너 보러 가신다며. 그 때 다같이 맛있는 거 사먹어. 마음만 받을게~" 

자기도 내게 선물을 주고 싶다며 한사코 받으라는 친구를 설득해 선물을 취소시켰다. 아주 비슷한 조명이 이미 집에 있기도 했고, 내 마음이, 선물을 받을 수가 없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사실 이 친구랑은 살면서 지금까지 얼굴 본 횟수가 5번 정도 밖에 안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락한 건 어제를 포함해서 3번정도 이려나. 1:1로 얼굴 마주보고 대화해본 적은 있는지 모르겠고 있더라도 뭐 한 5분 이내였을까. 횟수도 잘 모르겠을만큼 난 사실 이 친구를 잘 모른다. 

이 친구는 아빠와 함께 살고 계시는 아줌마의 둘째 딸이다. 아빠와 아줌마는 법적으로는 재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했는진 잘 모르겠다.)  함께 지내게 된 지 오래되었고 아마 평생 함께할 것이다. 두 분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특히 아줌마는 아빠를 아주 사랑하고 존경한다. 옆에서 바라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사실 엄마,아빠,나,동생이라는 가족형태가 무너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아줌마였다. 아니, 아빠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아빠와 아줌마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내가 초등학생 때 집 근처에서 추어탕을 팔던 아줌마는 가끔 음식을 배달하러 오셨을 때 뵈었었는데, 내가 고등학생즈음 때부터 아빠가 아줌마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얼마되지 않아 둘의 사이가 드러나게 되고 (아니 사실 그 전부터 우리 모두 눈치챌 수 있었지만) 그 후 몇 년간의 끔찍했던 시간 후에서야 많은 것이 정리될 수 있었다. 아빠는 엄마쪽 형제들에게도 돈을 빌렸었고 여전히 갚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의 이혼은 곧 집안 싸움이 되었다.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내가 스스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이미 그 상황 자체만으로 혼란스럽고 괴로운데, 엄마와 아빠는 나를 중간 메신저 역할로 삼았고 가운데서 내 정신적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이모와 잘 지내고 있지만 그 때는 학생으로 이모 집에 얹혀 살며 이모와의 갈등도 있었던 와중에, 심지어 부모님의 이혼 절차까지 개입하고 중재하고 진행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어야 했으니 정말 힘들었지. 참 많이 울었고 좌절했고 세상을 원망했다.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는 반면, 내 힘으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당시의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큰 상처였다. 

한동안은 아빠와 인연을 끊고 싶을 만큼 아빠를 원망했다. 괴물같은 사람. 나쁜 사람. 책임감 없는 사람. 무능력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그리고 지금은...?

사실 지금도 아빠가 살짝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 아주 많이 책임감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만 ... 그런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 아주 많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 사람은 실수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보기에 아빠는 본인의 선택으로 치뤄야 하는 대가는 이미 충분히 치르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럼에도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사람인 건 분명하니까. 

아빠는 아빠의 선택으로 3명의 자녀가 더 생기게 되었다. 아줌마에게는 2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이 있었다. 아줌마의 전남편은 알코올 중독자로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아줌마와 아이들을 때렸다. 그런 남편을 참고 또 참으면서 살다가 점잖고 말 잘하고 성격 좋은 우리 아빠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아줌마는 절대 아빠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줌마는 아빠를 진심으로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한다. 우리 엄마는 사실 아빠를 이렇게 존경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왜냐면 아빠가 자꾸 엉뚱한 실수들을 많이 했었으니까... 참 바가지도 많이 긁고 말싸움도 잦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줌마는 그렇지 않다. 추어탕을 팔던 아줌마는 이제는 삼겹살과 다른 요리들을 파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일을 많이 해서 손이 항상 퉁퉁 부어있다. 아무리 봐도 타고 나길 우리 아빠보다 훨씬 부지런하다.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들고 궂은 일이라도 못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이 부분도 우리 엄마랑은 참 다르네. 우리 엄마는 좀 공주님 과인데. 생활력 강하고 남편을 하늘처럼 챙기는 아줌마는 이제와 보니 우리 아빠와 딱이다. 아니면 엄마와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줌마와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빠의 삶의 모습이 더 아줌마와 맞게끔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빠와 엄마는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는 걸. 분명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이 함께인 모습을 보았었는데, 이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두 사람은 생김새도 옷차림도 말투도 삶의 모습도 달라져 있다. 한때 함께였던 사람이었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한때는 아빠를 빼앗아 간 썅년이었던 아줌마였지만, 시간이 지나 위의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나니, 아빠를 바로 옆에서 사랑하고 돌봐주는 한사람일 뿐이었다. 내가 아빠를 인생에서 버리지 않는 이상, 아줌마도 언제까지고 눈가리고 아웅하며 못본 척 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나는 서울에 있고 일년에 몇번 아빠를 보지도 못하지만, 아빠의 바로 옆에서 아빠를 챙기는 한 사람은 내가 아닌 아줌마였다. 심지어 아빠의 생일에 케익을 사서 아빠 집을 찾아가는 사람도 내가 아니라 아줌마의 세 자녀였다. 아빠는 이 사실을 내가 이해해주기를, 그들을 내 인생에도 받아들여주기를 바랐다. 아, 사실 이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그래 우리 아빠는 정말 이기적이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이런 모습까지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빠의 새 가족들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아빠를 사랑하니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생은 아빠와 인연을 끊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이고 평생 말하지 않을 이야기이지만, 난 아빠, 아줌마와 함께 있을 때 만큼은 아줌마를 부를 때 엄마라고 부른다. 그게 아빠의 보호자로서의 아줌마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직도 추어탕은 쳐다도 보지 않는 우리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아줌마의 세 자녀들은 참 싹싹하다. 특히 두 딸은 아빠 아빠 하며 우리 아빠를 참 잘도 챙긴다.  내게는 가족의 파괴였지만, 그들에게는 이제야 가족이 완성된 것이니 그러러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빠를 맡겨두었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줌마도 아줌마의 자녀들도, 내가 그 집에 있을때면 "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느낄 수 있게끔 행동한다. 사실 나는 그 사람들이 편하지 않다. 난 원래 혼자인 걸 꽤나 좋아하고, 피가 섞인 가족들과 같이 있는 시간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그 사람들이랑 있는 건 오죽하겠나.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랑 동갑인 둘째 딸이 쌍둥이 아기를 낳은 것을 전해 들었을 때도 사실 별로 관심 없었는데, 어제 아빠랑 연락하면서 아빠가 주말에 그 친구네 집에 간다기에 아기 선물을 보내게 된 것이다. 아빠는 이번주 주말에 생일을 맞이하는데 그 친구네서 같이 보낼 모양이었다. (아빠가 있는 지방은 아직은 코로나가 그리 심각하진 않아서 그 정도의 이동은 괜찮은 모양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선물을 보낸 것은 사실 그 친구나 친구의 아기를 생각해서라기 보다는 아빠를 생각해서였는데 , 아빠가 내가 그렇게 해주길 넌지시 원해서였는데, 그 친구는 내 마음이 고마워서 나를 위한 선물을 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난 그걸 받을 수가 없었다. 선물을 받으면 내가 미안해질 것 같았다. 얜 참 신기해. "조카보러 놀러와 언제든지 잘 방 비워둘게~!" 한다. 난 여전히 이 친구가 불편한데. 얜 안 그런가 보다. 아줌마도 아줌마의 세 자녀도 영원히 나의 친엄마나 친형제가 될 수 없다.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할 뿐,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밀고 들어오더라, 이 가족은. 

아무리 불편해도, 이제 남보다는 정이 가는 사람들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인연이라는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더라. 성향도 취향도 가치관도 그 어느 것 하나 맞지 않는 이 친구와 내가 이렇게라도 알게 되는 일이  '오은비'로 단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생기고 말았다. 이건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들어 둔 일일까?  고작 100년도 못사는 사람 인생에서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고 어떤 식으로든 옷깃을 스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운명이 겹쳐야 가능한 것일까. 이 친구와 이렇게 카톡을 나누는 것 자체도 너무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시대에 지구를 여행하는 동반자로서 이 친구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체로 큰 인연이니까.

어제 올린 긍정 확언 영상에 그런 댓글이 달렸다.

"대학에 떨어져서 너무 힘들었는데 이 영상을 보니 위로가 돼요."

그 댓글에 또 많은 지구여행자들이 댓글을 달았다.

"인생에 대학이 전부가 아니에요. 힘내요!"

맞다. 삶은 아주 여러 모습과 여러가지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에 '전부'인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도 그것이 무너지고 나서도 살아간다. 아빠를 뺏어갔다고 생각하며 원망하던 여자의 퉁퉁 부은 손을 보고, 그 사람의 여자로서의 그간의 고단했던 인생을 생각하며 마음이 찡해지는 순간도 온다. 살면서 마주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와 너무 다른 친구와도 친구가 된다. 이모에게 맞서 싸우다 맞아서 몸에 할퀴어진 상처가 난 채로 울면서 집을 나왔었다. 엄마가 전화로 "갈데가 어디있니 다시 이모집에 들어가 얼른..." 했을 때, 이대로 들어가면 자살하겠다고 울부짖었던 내가 있었다. 동물이라면 질색하던 이모가 이제는 조조를 자기보다 더 사랑한다. 조조가 죽는 날 자기도 죽고 싶다고, 본인은 삶에 별로 미련이 없으니 같이 손잡고 가고 싶다고 한다.

삶은 뒤죽박죽 다양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이 소풍은 짧은 듯 하지만 또 조금은 길어서, 돌아가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쨌거나,

삶은, 인생은, 생명은 그냥 그 자체로 가치 있다.

 

Comments

Ronny [Rendition]

I still remember when I was a child, my parents were a huge part of my world (I'm an only child). I can't even imagine how it must feel to have this taken away. Thinking of the new partner of either parent as the one responsible for the divorce is the obvious first thought. But being able to see the truth and accepting them is a huge sign of personal growth. After all, even if they couldn't love each other anymore, I'm sure both of your parents still love you and you love each of them somewhere deep inside your heart. Effectively, the new partners (and their families) give happiness to a person you love. Being able to accept that and embrace them for it is a sign of maturity. Despite all that happened, you managed to grow up into being a good person.

James Yi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말이 나이를 들어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점점 더 와 닿는 말 같아요. 가볍게 지나치는 사람들이나 겉으로 드러나는것만 봤을땐 나만 힘든거 같고 다들 잘나고 잘 살고 그런것같은데 모두들 개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저도 굉장히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든요. 졸지에 동갑, 저보다 좀 더 어린 아이, 그리고 아주 어린아이가 이복 동생들이 되버린... 심지어 막내는 반은 피도 섞이고... 대학 1학년을 막 마칠때 아버지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시고 그 후로 6년? 7년 후 폐 암 말기라고 스리슬쩍 다시 나타나서 나머지 여생을 여기서(캐나다) 보내면 안되냐고 나타나신... 심지어 처음 1년간은 이복 가족이 있다는것도 숨기고 나중에 어찌저찌 들킨 후에나 인정하고... 저는 너무 실망하고 학을 떼서 암이건 뭐건간에 아예 연을 끊다 시피 하고 엄마만 케어해드리는데 은젤님 글을 읽으면서 주제넘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참 사랑을 많이 받고, 많이 주고 진짜 제대로 된 어른이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참 쉽지 않은건데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이는게 너무 성숙하고 아름다우셔요. 인순이씨의 아버지란 노래를 들은 이후, 울컥해서 저도 언뜻 언뜻 제 아버지가 딱하게도 느껴져 다가가려고 발걸음을 돌리다가도 다시 뒷걸음질 치는데 너무 늦기 전에 조금 더 생각이 열리면 좋겠네요.

Anonymous

너무 좋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