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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이다. 내가 지금보다 화르륵 혈기왕성했을 때의 이야기. 

난 원래 억울하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일이 있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극단적 예시들 중 하나로, 연애할 때 다툼이 났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에 대해 6시간동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쉬지 않고 6시간.

당시 6시간 동안의 토론 주제를 이야기하자면, “내 생일날 선물을 받지 못해 서운하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인가?” 였다. 당시 연인도 나도 금전적 여유가 별로 없었는데 적어도 나는 정해져 있는 기념일을 축하할 돈은 준비하고 있었던 반면 남자친구는 아예 저축이나 계획을 일절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일 당일에 선물을 받지 못했고 서운하다고 이야기했다. 생일은 갑자기 나타나는 날도 아니고 지난 1년동안 시간이 있었는데 1년동안 이 정도의 돈도 모으지 않은게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달에 만원씩만 모아도 1년이면 12만원이고 선물 하나 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정도 성의도 없냐고.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어 징징댔던 내게 남자친구는 도리어, 내가 선물을 안사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네가 내 사정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서운하다고 말을 하는 것이 본인도 서운하다고 주장했다. 본인은 한달에 만원도 저축할 수 없다고. 그렇게 팽팽한 입장 대립으로 시작된 대화가 무려 6시간동안 이어지고 말았다… 어휴. 지금 생각하니 끔찍하다. 사랑은 진짜 사람을 또라이로 만드는구나. 참 의미 없었네.

더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생 때 수학시간의 일이었다. 내 앞자리 6명이 수업시간에 속닥속닥 낄낄대며 잡담을 하며 떠들었다. 그런데 수학 선생님이 보기에는 나까지 7명이 떠드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선생님은 칠판 판서를 하다 탁 분필을 내려놓고 뒤돌아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얘들아. 니네 반에 7공주가 있나 보다.” 아…설마? 하고 세어보니 나까지 일곱명이었다. 억울했지만 헷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만... 선을 넘고 말았다. 패드립을 시전한 것이다. 우리 엄마 아빠는 중고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수학 선생님은 부모님의 직업과 가정교육을 운운하며 비꼬면서 우리를 야단쳤다. 

수업이 끝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선생님을 따라 나서며 항의했다. “선생님,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떠들지 않았고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필기하면서 한 농담까지 따라할 수 있어요.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부모님 욕을 들은 건 참을 수가 없어요. 사과해주세요.” 하지만 선생님은 “얘가 왜이래 진짜!” 하며 교무실로 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기어이 눈물이 터진채로 선생님을 끝까지 따라갔다. “사과하세요!” 결국 내가 붙잡는 팔을 내치고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버린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난 교무실 앞에서 엉엉 대성 통곡을 했다. 지나가던 고전문학 선생님이 “은비야 무슨 일이고? 왜 우노?” 하며 어쩔 줄 몰라 하셨지만 난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누가 보든 말든 엉엉 울었다. 

이외에도 별별 에피소드가 다 있다. 어린 은비는 엄청나게 다혈질이었고 불같았다. 이런 나의 성향은 내가 나이가 들고 본격적으로 영상 제작 일을 하면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바뀌었다기 보다는, 내가 변화하지 않듯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싸우지 않고 화내지 않으려고 애써서 노력한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무의미하니까. 싸워서 그 사람을 바꾸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억지로 얻어내려고 하기보다, 그냥 그만두는 것이다. 그 편이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이니까. 연애를 예로 들면 난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바로 헤어진다. 이렇게 살아보니 실제로 마음이 아주 평안해졌다. 행복지수가 훨씬 높아졌다.  

그래서 이 집에 1년 반 동안 살면서 나는 층간소음으로 윗집과 싸우지 않는 편을 택했다. 시끄러워도 시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내가 이동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즉시,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어차피 윗집과 싸워봤자 그 사람들의 습관은 변하지 않을거고, 변하지 않는 모습에 내가 더 스트레스만 받을거라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오전11시부터 12시까지 또 천장에서 쿠당탕 난리가 나는 것이다. 이사 나가기 전 마지막 의무로 칼을 빼들기로 결심한 마당에 이걸 그대로 들 수는 없었다. 핸드폰으로 녹음을 해보았다. 층간소음은 진동이라서 핸드폰으로 녹음될 정도면 상당히 높은 데시벨의 소음에 속한다고 했는데 윗집의 발소리는 생생하게 녹음되었다. 어제 전화를 그렇게 했는데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하. 변하지 않을거란 건 알았어. 하지만 막상 정말 이러니까 열받는군.

싸우기로 마음 먹은 이상 다시 돌아간다. 싸움닭 나로. 거의 1년동안 화를 내지 않는 생활을 하며 심신을 다스려 왔지만 오늘은 돌아간다. 각성하라 다혈질 B형. 깨어나라 논리의 신이여. 날아오르라 싸움닭!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윗집이 또 시끄럽네요. 전화 한번 해주세요”

경비 아저씨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당연하지. 어제 몇번이나 전화하고 지금 또 전화하는 나도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데 중간에 끼인 당사자는 오죽하겠나. 하지만 방법이 없다. 껄끄럽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계속 참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잠시 후, 인터폰이 울렸다. 오호라? 윗집이었다. 

“네~”

“000호에요!”

“네.”

“어제도 전화하셨죠?”

“네”

“어제부터 도대체 몇 번을 전화하는 거예요??!!!!”

—————내일 일기에 계속—————————————

Comments

Anonymous

악 궁금해서 잠못잡니다~~~

Ronny [Rendition]

Breathe in... "Only 2 more weeks" Breathe out... "Only 2 more weeks" Repeat x10 And if that doesn't calm you down, follow the old saying "I don't listen to Heavy Metal often, but when I do, so do the neighbors".

Anonymous

가끔 소리를 질러줘야 속병 안생깁니다.

Anonymous

계속 참으면 생기는게 화병이라고 하더라구요 한국에만 있는 병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