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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중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처음 했을 때는 적잖이 놀랐었다. 하지만 친구가 진심을 다해, 본인이 인권 잡지에 기고한 글의 링크를 공유하는 방법으로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에 순간 놀란 마음 이후에는 이 친구가 겪어왔을 힘든 시간에 대한 애잔한 마음과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마음이 들 뿐이었다. 나는 참 행운아다. 만약 내가 접한 첫 커밍아웃이 무례하고 가벼웠다면 나는 성소수자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커밍아웃을 겪기 전, 내가 더 어렸을 때로 올라가보자.


중,고등학교 때 여중, 여고에서는 일부 아이들이 이반이라는 걸 티내고 싶어 안달나 하곤 했다. 이반은 일반과 대비되기 위해 만들어진 말로 성소수자들을 일컫는 은어였다. 나는 그 아이들이 정말로 성소수자인건지 아니면 그저 특별해지고 싶은 중2병스러운 마음에 성소수자인 척 하는건지 의심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즈비언이건 아니건 그런건 중요하지 않으니 자신들이 커플이라는 이유로 교실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몰래 키스를 한다거나 도서관 으슥한 곳에서 더 진한 스킨쉽을 하다 다른 학생들에게 들키거나 하는 것이 정말 짜증났었다. 학교가 남녀 공학이고 이성 커플이었어도 불편했을 행동이니 성소수자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공중 예절의 문제였다.


여하튼, 10대 시절 내가 경험했던 이반 아이들의 관종스러운(관심을 지나치게 목말라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관심종자. 관심종자를 줄여서 관종이라고 부른다) 행동들로 나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처음에는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공중 예정을 모르는 관종이라 생각했으니까.


이후에 내게 처음 커밍아웃을 해준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내 인식은 별로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다. 덕분에 내 주변에 ‘진짜’ 성소수자가 실제로 존재하고, 내 생각보다 실은 훨씬 많았고, 그들은 그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 더 돋보이기 위해 특별한 소수가 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태어났고 이 세상에서 소수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걸, 그들은 다수가 ‘성공’이나 ‘업적’으로 인정받으려 노력할 때, ‘존재’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걸.


한번 성소수자 세상을 알고나면 그때부터 해리포터의 비밀 정류장이 보이듯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된다. 누군가는 유난히 살찌는 체질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눈매가 유난히 쭉 찢어지게 태어나듯 그렇게 성소수자들도 태어났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처음 커밍아웃을 했던 남자 친구 이후로도 여자 친구 두명이 커밍아웃을 했었다. 게이 인권단체 친구사이 라는 곳을 방문할 일도 있었다.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은 이제 내겐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다만 물론 그들 사이에도 개개인 특성은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 성소수자들 중에도 좋아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고 안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쨌든...


아프리카TV에서 개인방송을 하면서 트랜스젠더 언니들도 만나게 됐다. 트랜스젠더 언니들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솔직히 말하자면 ‘안타까움’ 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혹시나 그들의 입장에서 ‘생물학적 여자의 우월감’으로 느껴질까봐 조심스럽다. 함부로 동정하는 것만큼 오만한 것도 없을테니까. 하지만 일기니까... 여긴 내 공간이니까 솔직해져 보겠다.


왜 안타까웠나면, 여전히 생물학적 남성의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체격이나 목소리가 특히 그랬고 실은 얼굴도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행동은 너무나 여성스러웠기에 그게 안타까웠다. 여성스러웠다는 표현조차 요즘은 성적 고정관념을 불러오는 표현이라고 하니 이것도 조심스럽네. 큼... 뭐라고 해야할까. 그냥 느껴졌다. 이 언니들이 여자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태어날 때부터 여자였지만 남자의 몸으로 살았고, 힘든 고민과 번뇌의 시간을 거쳐 무려 성전환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 살아가며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 혼자 괜히 마음이 좀 아팠다. 분명 내 오만함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다들 외모 자체에서 오는 괴리감이 없었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적어도 그 친구들은 본인들이 숨고 싶으면 숨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트랜스젠더는 그럴 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유독 그렇게 아프고 짠하게 느껴졌다. 본인이 말 안하면 아무도 모를 정도로 외모도 여느 여성과 똑같았다면 또 느낀점이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등학생 때 프랑스어 시간에 선생님이 영화를 보여주었었다.남자의 몸을 갖고 태어났지만 마음은 여자인 아이 루도빅의 이야기. 루도빅은 꿈 속에서 요정을 만난다. “야! 너가 태어날 때 쓰레기통에 실수로 떨어뜨렸던 X유전자 하나를 내가 다시 찾아왔어~! 자, 이제 너도 여자가 될 수 있어!” XX로 태어나야 했지만 요정의 실수로 XY로 태어나버린 루도빅은 또래 남자 아이들이 야외에서 뛰어놀 때 엄마의 화장대에서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입술에 바른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예쁜 여자 배우가 춤추는 몸짓을 보며 사뿐사뿐 따라해본다.


그때는 그 영화의 인물들에 감정을 이입하지 못했다. 루도빅을 경멸해서 옷을 벗겨 모욕을 준 학급 친구들, 루도빅을 호되게 야단치며 눈물 흘리는 루도빅의 부모님, 결국 부모님에게 강제로 삭발을 당하며 세상을 다 잃은 듯 공허한 눈빛을 하던 루도빅 등등. 별 감흥이 없었다. 단지 그 주인공이(남자아이) 나를 닮았다는 이유로 (헤어스타일이 비슷했다) 친구들이 내게 그 아이가 추던 춤을 춰보라고 했고 나는 그걸 따라 추며 우리는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그 포스터를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커서 여자가 될거야!” 이 말이 너무 슬퍼서.


나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무서워하고 슬퍼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 시간, 삶과 죽음에 집착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의 노력이나 간절함의 정도에 상관없이 그냥 ‘안되는 것’이 있다면 당신의 마음은 어떨까? 그냥, 절대 안되는 것.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그냥 단호하게 안되는 것. 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너무 슬퍼서. 너무 너무 슬프다.


나는 이전에도 지금도, 비록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많이 있다 하더라도,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감싸고 옹호하지는 않는다. ‘소수’라는 사실은 상식이나 규칙을 어기는 명분으로 사용될 수 없다. 소수에 속한다는 건 더 독특한 것도 더 멋진 것도 더 배려를 많이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수와 소수가 ‘그냥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그들의 ‘존재’ 만큼은 인정해주고 싶다. 커서 여자가 되고 싶다는 루도빅의 꿈과 그런 루도빅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다.


요즘 유독 트랜스젠더 이슈가 많다. 유튜브에도 공중파 뉴스에도 시끌시끌 하다. 부족한 인성과 욕심을 가진 누군가가 대표적으로 어이 없는 사건을 하나 일으키면 그 소수집단 전체가 다 싸잡아 욕을 먹게 마련이다. 소수라는 걸 무기로 오히려 배려와 혜택을 강요하는 것 같으니 오죽 짜증이 나냐. 그러니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선플, 악플, 찬성, 반대 다 할 수 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서 혐오할 수도 있다. 무서울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와중에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그 혐오를 뱉기 전에,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존재’ 자체의 문제에 대해 한번만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 ‘누나랑 엄마랑 같이 목욕부터 하고 이야기하자’는 댓글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길어졌다. 그게 뭐야... 생물학적 여자인 나도 이미 중학생때부터 민망해서 목욕 같이 안하고 목욕탕도 안가는데... 그게 뭐냐구. 그 말대로라면... 어떤 선행을 하건 얼마나 조용히 선하게 평범하게 살건 영원히 트랜스젠더는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건데 그게 나는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 루도빅이 생각나는지. 왜 한 트랜스젠더 개인의 행동으로 많은 루도빅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때문에 울어야 하는지.


일기 끝.


사진은 영화 나의 장미빛 인생. 주인공 루도빅.

닮았나요 저랑? 지금은 하나도 안닮은 것 같은데 하하


Comments

Anonymous

Grrr 은젤 선생님... You're giving me a lot of homework ! I'm trying to translate by myself but sometimes you are writing ALOT ㅋㅋㅋㅋ.

Anonymous

진지하게 공감하며 읽었는데 포스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 적 없는 과거의 은젤님 모습이 묘하게 상상되는 것 같기두...

rambam

My viewpoint is are you hurting someone? No? Then do what you want as long as you don't spread hate to the ones who don't share your beliefs

Ronny [Rendition]

A long read on a controversial topic. I tend to agree with Toy: As long as nobody is hurt, fooled or pestered, just let everyone live their life as whoever they want to live it. My tolerance ends when there are attempts to trick people ("traps") or persuade them. But such cases are rare. And like with every misdeed in life, certain individuals' bad actions should not give the whole group a bad reputation.

Anonymous

성소수자나 트렌스젠더나 무시하거나 하진 않는데 군대를 가는 것 같은 의무는 지지 않으려는 것 같은 행태를 보면 미워짐..

Anonymous

가끔 티비에 나와서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강제로 주입하려는 모습이 싫어하게 되더군요 포스터는 전혀 은젤님 닮지않은거 같은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