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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2학기에 경남 진주로 전학을 갔었다. 서울에서는 매학년 반장을 도맡아 하고 신나게 나대던, 한마디로 '나와바리' 였기 때문에 진주에 와서 친구들에게 먼저 살갑게 말을 걸지 못했다. 방법을 몰라서였는지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미 친한 아이들끼리 무리가 다 만들어 진 이후라 내가 끼어들 틈이 없는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알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 가든 친구가 많고 주목받는 아이일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참고로 같이 전학 온 내 동생은 예쁘다는 이유로 바로 친구 많아짐...또르르 ) 

어쨌든 5학년 2학기의 내 생활은 한마디로 '외로웠다.' 같이 다니는 여자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 교실에서 혼자 겉도는 그 기분이란... 어느 날의 체육 시간에는 몸이 아파 나만 빼고 반 아이들이 다 운동장에 나갔었는데, 우리 분단 여자아이와 옆반 여자아이가 주고받던 펜팔장을 몰래 열어보았다가(나쁜 손버릇 ㅎㅎ) 내 욕이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서울에서 전학왔다고 싸가지없게 굴면 확 밟아줘'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아하 내가 진주 아이들에게는 '대도시에서 온 재수 없는 여자 아이'로 보이는구나. 둘의 펜팔장에 아무 관련 없는 내 이야기가 이렇게 오르내리다니... 속상했지만 뭐, 몰래 훔쳐 본 내 잘못이었으니 혼자 가슴에 상처로 묻게 되었다. 

사실 누군가가 먼저 내게 다가와서 나와 친하게 지내줘야 할 의무같은 건 없었다. 그때도 혼자가 되고 나서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겨울 방학만을 기다리며 빨리 6학년이 되고 새로운 반이 배정되기를 기다렸다.  6학년 올라가면 새롭게 시작해보자... 아직 모두가 서로 낯설 때, 그때는 내가 먼저 싹싹하게 다가가고 노력해서 친구를 사귀어야지 마음 먹었다. 

그런데 우리반에 '정민행' 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단지 나와 가깝게 지내지 않는 것을 넘어 점점 내게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그 정도가 심해지기 전에 곧 5학년 2학기가 끝나 겨울 방학이 되었다. 휴... 드디어 이 불편한 시간이 드디어 끝났구나!

6학년이 되고 새로운 반이 배정되었다. 민행이와는 다른 반이었다. 게다가 같은반에 배정된 여자아이 중 한명은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였고 또 마침 나는 그 아이와 친해졌다.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도 했고, 나도 이제는 서울에서 친구 많고 리더를 도맡아 하던 은비가 아니라, 털털하고 유머러스한 조력자 친구 은비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니까. 전학이라는 경험은 그렇게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나를 성장하게 했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때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인기 많은 그 아이의 베프로 내 6학년은 문제 없이 시작되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며 민행이를 스쳐 지나가게 되었다. 그 아이는 양쪽에 자기 친구들을 한명씩 팔짱을 끼고 있었다. 세 명의 민행이 무리가 나를 지나치는 그 순간 나는 선명하게 듣고 말았다.

"씨발년"

응? 응??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뭐야? 양쪽 아이들은 심지어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다. 뭐지...? 나한테 한 말인가?? 그리고 그 아이들의 그 행동은 계속됐다. 복도에서 나를 마주칠 때 마다 민행이 무리는 내게 욕을 했다. 욕을 뱉고 지나가며 까르르 웃었다. 당황스러웠다. 그 때의 나는 쪽팔리게도, 한마디 반박도 못했다. 처음에는 우연히 타이밍이 맞았겠지 현실 부정을 했고, 이후에는 욕을 들을 때마다 무서워졌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복도에 나가고 싶지 않아졌다. 민행이를 마주칠 것 같아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차라리 나 혼자 지나갈 때만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그 아이들은 내가 베프와 같이 지나가는 어느 날에도 욕을 했다. 그 날, 베프 앞에서 쌍욕을 들은 그 날 내 마지막 자존심은 무너지고 말았다. 모욕감. 치욕감. 내 베프는 "너한테 욕한거야? 뭐야? 왜?" 라며 내가 처음 욕을 들었던 날처럼 어리둥절해 했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이유를 모르는 걸. 민행이와 싸운 적도 없었고 우리는 이제 같은 반도 아닌데. 쟤가 저러는 이유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 엄마한테 이야기 하자. 털어놓기까지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엄마가 속상해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걸 말하기 쪽팔린 마음. 엄마의 자존심과 나의 자존심이 동시에 부서질 것 같은 그 복잡한 생각 때문에 13살의 나는 엄청난 번뇌의 시간을 거쳤다. 하지만 그 상황을 계속 겪을 수는 없었기에... 용기를 내고 엄마와 마주 앉았다. 입을 열었다.

"엄마... 학교에서 어떤 애들이 나를 마주칠 때마다 지나가면서 욕을 해. 나 너무 힘들어. "

진지하게 털어놓은 내 고민에 엄마가 발랄하게 한 대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아이들이 너를 좋아해서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나보다~ ^0^"

...조졌다고 생각했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절대 절대 절대... 아이들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어른들이 보기에 10대들의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10대 아이들에게는 그 세상이 전부다. 아이들이 느끼는 아이들 사이의 권력 구조는 어른들이 느끼는 사회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버린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게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엄마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이해가 안되는데 어쨌든 엄마는 그렇게 반응하고 넘겨버렸다. 절망... 마지막 희망을 잃어버린 그날의 기분 역시 여전히 생생하다. 

그 다음날. 나는 또 복도에서 민행이 무리를 마주쳤고 그 아이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듯 나를 지나가며 발랄하게 외쳤다.

"미친년 재수없어 까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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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기에 계속-

Comments

Anonymous

어린맘에 상처가 컷겠어요. 나쁜X 이네요

Anonymous

Hmmm, you ended up being a good person, helping others so maybe this story get happier later ? I hope so, the first part was sad. ㅠㅠ Sleep well, now i want to read the second part grrr. Tomorrow. 🏕

Ronny [Rendition]

Oh dear, that sounds all too familiar. From my own school time experience I know this one thing: children can be VERY cruel. And as a teenager you really take these things to heart, you start to seek the fault within yourself, especially if there is no support from family members. Looking forward to learn how the situation resolved and lead you to being the good person you are today.

Anonymous

I look forward to reading the second part of your story tomorr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