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Patr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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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렸을 때와 지금, '패션'을 대하는 자세는 아주 많이 바뀌었다.
1.바지
예전에 즐겨 입던 스키니 진(딱 달라붙는 청바지)은 안입게 된지 꽤 된 것 같다. 나는 쇠 알러지가 있어서 사실 버클이 있는 바지는 어떤 종류든 입으면 두드러기가 돋는다. 그래서 바지 안쪽 쇠 버클이 살에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은 항상 밴드를 먼저 붙인 후 입는다. 일반 바지에도 그렇게 예민하게 살이 반응하는데 스키니진은 오죽했겠나. 한 바지 안에도 생각보다 더 많은 쇠버클이 달려 있다. 더 예뻐보이기 위해 스키니진을 입고 두드러기로 고생하고를 반복했었던 그때와 달리 요즘은 차라리 치마를 입거나 허리에 고무줄 처리가 된 바지를 가장 즐겨 입는다. 헐렁한 바지도 좋아하고. 제일 편한 건 롱치마다.
2.메이크업
화장에 공을 들이는 것은 예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풋풋한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 앞 하숙집에서 살던 시절 술먹고 밤에 들어오는 날이면 씻으러 거실로 나가기가 너무 귀찮아서 메이크업도 지우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잠들곤 했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막 지냈는데도 피부가 버텨줬던 걸 보면 역시 당시에는 세포 자체의 힘이 엄청났었던가 보다. 어쨌든 요즘은 메이크업을 할 때도 지울 때도 예전보다 굉장히 신경써서 하고 있다.
달라진 점은, 예전에 비해 제품을 구매하는 양이 줄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떤 제품의 광고를 보게 되면 저 제품이 없는 메이크업은 그냥 망한 것 같은 강박이 들었었다. 저걸 사야만 비로소 얼굴이 완성될 것 같은 기분? 하늘 아래 같은 레드가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 때는 딱 그런 마음이었다. 집 주변에 해당 제품 브랜드가 없으면 먼 동네 백화점에 까지 가서 아이라이너 하나를 사오곤 했었다. 요즘은 나에게 제일 잘 맞는 익숙한 제품들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 좋은 제품들을 협찬받게 되거나 선물을 받게 되어서 더 안사게 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이전에 비해 화장품 광고에 현혹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3.신발
다른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신발만은 정말 다르다. 나는 발 볼이 옆으로 넓고 좀 투박하게 생겨서인지 하이힐이 편했던 적이 한번도 없다. 20살 때 우리 과에 매일 매일 9cm짜리 힐을 신고 등교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정말 궁금해서 '00아 너 매일 힐 신어도 발 안아파?? 나는 진짜 너무 아프던데..' 라고 물어봤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별로 아프지 않다고 대답했다. 결국 의지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하루는 나도 힐을 신고 등교했다. 평소에는 힐을 신는 날이면 운동화나 슬리퍼를 가방에 따로 챙겼었는데 그 날은 의지로 버텨내리라는 생각으로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는 참혹했다. 하루 종일 발이 견딜 수 없이 아파서 식은 땀이 났고 결국 집근처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집까지는 맨발로 걷다 쉬다 걷다 쉬다 하며 와야 했다. 내 발이 문제인 건지 힐이 싸구려여서 그런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후에 20만원대의 구두도 사서 신어 보았지만, 앞 가보시가 없고 뒷굽이 얄상한 섹시한 디자인의 구두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너무 아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굽이 있는 신을 신고 싶을 때에는 두툼하게 안정감 있는 굽의 구두를 신거나 꼭 여분의 슬리퍼를 챙기게 되었다. 평소에는 매일 운동화만 신고 다닌다. 아픔의 정도가 감당 불가 영역이어서인지 이제는 내 눈에 구두가 별로 예뻐보이지 않아서 안 신게 되는 것도 있다. 구두를 신지 않기 위해 피하다 보니 평소 즐겨 입는 옷 스타일도 점점 페미닌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캐쥬얼화되는 것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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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촬영 때문에 신은 꽃신때문에 여전히 발이 너무 아파 고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굽도 낮았지만 발을 생각해서 만들어진 신발이라기 보다는 소품에 가까운 신발이었고, 꼼꼼하지 못한 내가 맨발에다 신는 바람에 발 뒷꿈치와 여기 저기가 다 심하게 까졌다. 집 안에서 걸어만 다녀도 발바닥이 여전히 아프다. 조조와 산책을 나갈 때에도 운동화를 꺾어신어야만 한다. 발이 아프니 온몸이 이렇게나 피로하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새삼 '나는 앞으로도 운동화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신발 만큼은 이번 생에는 구두와는 인연이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