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바비 (Patr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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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기 전에 웹툰을 보고 자는 나. 그 중 참 오래 챙겨보고 있는 웹툰이 유미의 세포들 이다. 그리고 어제 유미가 바비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했다.
바비는 완벽한 남친상 그 자체였다. 전 남자친구 웅이가 여사친 새이를 대하는 어설픈 처사로 유미를 속상하게 했을 때 실제로 내게도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 함께 분노했었고, 그런 유미에게 적극적인듯 부드럽게 다가온 바비에게 열광했다. 2년 가까이 되는 연애 기간동안 바비는 너무 멋진 남자였다.
댓글들 중에는 "자기도 웅이와 만날 때 바비에게 흔들려 놓고 바비가 다은이한테 흔들리니까 내로남불이냐"는 의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의견은 말이 되지 않는 게, 그래서 결국 유미는 웅이와 헤어졌으니까. 댓글 논리대로라면 바비 입장에서 유미와 헤어지고 다은이와 만나는 게 자연스러우니 유미가 먼저 헤어지자고 이야기하는 게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 내 과거 연애를 돌이켜 봤다. 남자친구가 있을 때 다른 남자가 멋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더 나아가 남자친구가 있을 때 다른 남자의 고백이나 대쉬에 흔들린 적이 있었나? 이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 나는 결국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유미는 20대가 아니다.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어떻게 보면 이미 지난, 30대 여성이다. 신선한 자극에 열광하고 충동적인 것을 매력이라 생각하는 20대라면 연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더라도 새로운 사람에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미의 나이라면? '자극'보다 '친밀감'과 '신뢰'가 하루 하루 더 소중하게 여겨지게 된다. 내 한 번 뿐인 인생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 이기에, 잠깐의 쾌락보다 더 크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싶어지는 것이다. 신선한 자극을 계속 추구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온전히 나한테 달린 것이다. 어쨌든 하고싶은 말은, 나이가 들수록 나의 결정이 가져오는 결과가 얼마나 중대하고 영향력이 있는지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점점 더 후회할 일은 하지 않게 된다는 거다.
이제와서 보면 그렇게나 스윗했던 바비의 애정표현이 줄어든 건 사실 꽤 됐다. 특히 다은이를 알게 된 후 바비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 유미를 신경쓰이게 했다. 바비의 명탐정 세포는 이제 유미에게 궁금한 게 없어보였다. 바비의 속마음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둘은 결국 헤어져야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본다. 연인과의 친밀감과 신뢰가 안정적일 때는 아무리 멋진 새로운 남자가 다가온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흔들리고 결국 헤어졌을 때는 연인과의 관계가 이미 어떤 부분에선가 삐걱이고 있었다. 헤어진 후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었어도 헤어짐 자체가 후회된 적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억지로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떠난 마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바비와 유미는 2년동안 연애를 했고 독자인 나도 2년동안 바비를 사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이별을 한다. 바비가 다른 사람에게 흔들린 것에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껴 충동적으로 헤어지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바비를 이렇게나 사랑하지만, 그의 마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놓아주는 것이다. 무의미한 관계를 붙잡고 있으면 서로가 힘들기만 할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다. 난 내가 이렇게 유미와 세포들에 감정 이입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다른 웹툰들처럼 챙겨보던 웹툰 중 하나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바비를 많이 좋아했나 보다. 눈물이 난다. 아직도 바비를 너무 사랑하고 바비와의 추억들이 생생한데 이제 바비의 마음은 손안의 모래처럼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이다.
바비야. 니가 준 수많은 설렘에 너무 감사해. 2년동안 사랑해줘서 고마워.
(이후에 웹툰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미랑 바비가 결혼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 바비를 보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