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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사람과 세상과 두통거리


※레이 테일러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사장실 문을 노크했다.

이 방의 주인을 닮아 우아한 아름다움과 견실함을 겸비한 나무문이 노크하는 내 손을 기분 좋게 튕겨준다.


“들어오세요…… 어머, 레이 선생님. 무슨 일 있나요?”

“아뇨, 첫날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인사하러 왔습니다.”

“네에, 고마워요. 올해도 다루기 힘든 학생들만 모였네요.”


클레어는 책상에 앉아 쓴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왕립학교랑 비교해도 학원에 오는 학생들은 야심 가득한 학생들이 많으니까요. 거기다 올해는 알레어랑 메이도 있고요.”

“그게 제일 큰 두통거리예요…….”


클레어는 책상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무리도 아니다.


“어떻게든 될 겁니다. 우리 딸들을 믿어보죠.”

“당신은 낙관적이군요, 레이 선생님.”

“클레어 이사장님이 너무 비관적인 거라고요.”

“그런 걸까요.”

“그런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말을 건네자 클레어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면서 표정을 풀었다.

그녀와 연인이 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몇 번을 봐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모만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다.

클레어의 존재 자체가 아름답다.


“그건 그렇고 상당히 과감한 방 배정이었군요. 알레어와 메이랑 함께 시몬을 한 방에 배정하다니. 뭐, 릴리는 납득이 가지만요.”

“어쩔 수 없는 조치예요.”


클레어는 한숨을 크게 한번 쉬고서 말을 이었다.


“알레어와 메이는 늦든 빠르든 뭔가 문제를 일으킬 테고, 시몬은 시몬대로 출생에서 비롯된 문제를 안고 있어요. 따로따로 떼어놓는 것보단 한 곳에 모아두고 릴리의 보살핌을 받는 게 제일 좋아요.”

“사실상 릴리가 보호자인 거군요.”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요.”


무슨 뜻일까. 시선으로 뒷말을 재촉하자 클레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릴리는 릴리대로 문제를 안고 있죠?”

“클레어 이사장님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까? 저는 이미 시간이 해결해 줬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녀의 성격으로 봤을 때 그런 건 아무런 효과도 없어요. 그녀가 저지른 죄는 아직까지도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고생 많은 성격이네요.”

“우리도 만만치 않은데요?”

“뭐, 우리한텐 서로가 있잖아요.”

“……아직 학교랍니다, 레이 선생님?”

“이미 방과 후예요.”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클레어를 등 뒤로 끌어안았다.

클레어는 살짝 움찔했지만 나한테 엉큼한 의도가 없다는 걸 눈치챘는지 의외로 순순히 몸을 맡겼다.


“저 아이들을 어떻게 보나요?”

“아주 멋들어진 삼각관계라는 느낌일까요.”

“역시 그렇게 보이는 거군요.”

“짝사랑 상대인 제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우습지만 릴리한테는 새로운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10년도 더 넘은 얘기지만 릴리는 자신의 성적지향과 신앙의 딜레마에 괴로워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이야 정령교회는 동성애를 『용인』하고 있지만 당시엔 이성애만 인정받는 풍조가 강했다.

릴리를 두고 험담을 떠들던 수녀한테 동성애는 악이 아니라고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릴리가 그 자리에서 얘기를 듣고 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릴리가 나한테 반하게 된 것이다.


당시부터 나는 클레어말고는 안중에 없었는데, 릴리도 참, 단념할 줄을 몰랐다.

그 후로도 몇 년에 걸쳐—— 내가 클레어와 결혼하고 나서도 릴리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해주는 거야 영광이지만, 저는 세컨드로 어떠세요? 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그래도 전 추기경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냐고 태클을 걸게 된다.


“알레어의 사랑도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네요. 아직까진 쉽지 않아 보이지만요.”

“릴리 입장에서 보기엔 알레어는 거의 딸이나 여동생 같은 느낌이겠죠.”

“제 눈에는 릴리가 오히려 메이에게 더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여요.”

“메이를?”

“네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럴 때 클레어의 감은 예리하다.

야생의 직감—— 과는 좀 다르다.

클레어의 감은 논리적인 추론의 영역이지만 워낙 깊고 복잡한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어서 말로 표현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그 추론은 정곡을 찌른다.


“그럼 메이는?”

“그거야말로 말할 필요도 없죠.”

“……머리 아픈 일이군요.”

“정말 그 말대로예요. 필요해지면 레네와 의논해보도록 하죠.”


레네는 한때 클레어가 귀족이었던 시절, 어렸을 때부터 클레어를 섬겼던 전 메이드다. 과거에 친오빠와 사랑에 빠지고만 일도 있었다.

지금은 시몬의 보호자다.


“시몬은 또 시몬대로 복잡한 아이죠…….”

“다행히 그 아이가 처했던 환경을 감안해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착하고 올곧은 아이인 것 같으니까요. 시몬이 알레어의 태평한 성격을 배웠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면서 동시에 학원 안만이라도 시몬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장소가 된다면 그게 가장 좋은 일이겠죠. 하지만——.”

“네, 어렵겠죠.”


마왕과 결전을 치른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마물의 피해는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그리고 그 구도는 앞으로도 쭉 달라지지 않고 이어질 거라는 걸 나도, 클레어도 알고 있다.

그건 이 세계의 구조에서부터 유래된 문제니까.


“루프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 문제도 결국은 결론이 나지 않는 상태죠.”

“……정치라는 게 아주 성가신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거야 진즉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문제가 문제니만큼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도 없군요.”


마법세계와 과학세계를 반복하면서 양쪽 세계가 서로를 수복한다—— 그게 이 세계의 기본적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은 현재 클레어의 것이다.

이런 중요한 권한을 개인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는 건 클레어도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묻는다면 좀처럼 좋은 차선책이 떠오르지 않는 게 지금 상황이다.


“레이가 말한 국제적 연합조직을 만들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제국의 힘이 감소하면서 반대로 각국의 발언권이 강해진 탓에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힘들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네요.”


한때, 나 제국 전 황제 도로테아는 침략주의 외교를 추진했고, 그 결과 다른 국가들이 나 제국에 맞서 결속을 다졌다.

하지만 도로테아가 세상을 떠나고, 현 제국 황제인 필리네가 융화외교로 노선을 틀면서 오히려 국제질서는 더욱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전란에 시달리던 시대보다 평화로운 시대가 더 어지럽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군요.”

“여차하면 필리네한테 말해서 악역을 맡아달라고 할까요?”

“바보 같은 소리 마세요.”

“그쵸—.”


콩, 하고 꿀밤을 맞았다.

장난스런 손길이라 아프진 않았다.

나도 짐짓 익살을 부렸을 뿐이다.


“필리네가 시험운용을 개시한 전이문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그건 멋진 물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아직 시험단계지만 그 기술은 분명 세상의 거리를 단축할 거예요.”


그건 확실히 그렇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전이문은 나 제국의 유적에서 발굴된 과학문명의 기술을 이용한 것이라 아직 정확한 구조는 밝혀지지 않았다.

구조가 밝혀지지 않은 물건을 잘 모르는 상태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뭐, 그렇게 따지면 마법이라는 기술부터가 밝혀지지 않은 부분으로 한가득이나 마찬가지지만.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요.”

“뭐, 할 수 있는 범위에서부터 조금씩 손을 볼 수밖에 없죠.”

“그러네요.”


뒤에서 안고 있던 팔을 풀고 클레어를 놓아줬다.

클레어는 퇴근할 준비를 할 모양이다.

나도 그만 집에 갈 준비를 하려고 교무실을 향해 발길을 옮겼을 때—— 한 가지 생각난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잊은 거 없나요, 클레어?”

“뭐가 말인가요?”


클레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귀엽구만.


“사랑하는 아내한테 건네는 수고했다는 말은?”

“……밤에 잔뜩 귀여워해줄 테니까 착한 아이로 있으세요.”

“네에—.”


뭐어, 잠자코 당하기만 하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약속』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참 쉬운 사람이라니깐.


“그러면 현관에서 만나는 걸로.”

“네.”

“클레어.”

“네?”

“사랑합니다.”

“네에, 저도…… 아니 무슨 소리예요! 직장에서는 자제하세요!”


얼굴이 빨개진 클레어를 남겨두고서 교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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