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Patreon)
Content
인터넷에는 그의 실체가 조금씩 공개되고 있었다.
아니... 실화야 ? 어떻게 타이밍이 이렇게 된댜...?
며칠 전 올렸던 썰 ASMR에 등장했던 그는 3년이 지나 진짜 성범죄자가 되어 경찰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내렸다. 내가 가이드 녹음을 위해 5시간동안 옆에서 지켜봤던 그는, 꽤 명망있는 뮤지션 치고는 기본 미디조차 다루지 못하는 기계치였다. 기본적인 녹음, 튠 작업조차 직접 할 줄 모른다고 그 때 있었던 엔지니어가 내게 그의 흉을 넌지시 봤었지. 그런 그가, 몰래카메라 장비는 잘 다루었다는게 소름이 돋았다. 그런 장비를 물색하고 구입하고 설치했을 그의 얼굴을 생각하니 속이 메스꺼웠다.
그가 불법 촬영, 유포(의혹이지만) 했다는 팬과의 성관계 영상 중 일부는 2017년 4~5월에 찍힌 것이라고 했다. 팬들에게 DM으로 접근한 수법을 볼 때 피해를 입은 팬이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밝혀진 피해자가 3명이라고 한다. 그 날 작업실에서 자기 팬들의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며 히히덕대던 것을 생각하면 30명도 부족할거야. 그 날 이후 다른 선배들에게 들었던 얘기지만, 그가 젊은 시절부터 팬들과 수시로 잠자리를 해왔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본인이 직접 이렇게 이야기하기까지 했다고 했지.
"난 A급 뮤지션 아니라서 어차피 기사 한줄 안나 ^^ "
그가 내게 DM을 보내 업무를 빌미로 자기 작업실로 나를 불렀던 때는 2017년 6월이었다. 그사람, 그 날 밤 내내 눈 뒤집힌 짐승처럼 할말 안할말 구분 못하고 상식밖의 말과 행동들을 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같은 수법으로 이미 여러번 팬과 관계를 하고 촬영까지 하고 있던 과정에서 나도 불렀던 것이니, 그냥 당연하게 그 날은 나와 잘 생각이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그의 머리속은 그랬던 것이다. 성범죄자는 더하면 더했지 절대 되돌아갈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때 그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넘어오지 않는 내가 얼마나 이해안되고 짜증났을까? "다른 여자애들은 다들 잘 되던데, 당장 지난달에도 성공했는데, 이 망할 기집애는 왜이렇게 튕기는거야??" 싶었겠지. 촬영할 준비 다 해놨을텐데 헛수고였으니 얼마나 승질났을까. 썰ASMR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문제의 그 날이 지나고 이틀 후 내게 작업 결과물을 보내는 메일에서, 고상한 척 하면서 실은 내게 엄청나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미안해할 줄 알았던 그는 오히려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의 그 짜증과 분노의 이유를, 3년이 지나 이제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들이, 성범죄자였다 생각하니 끄덕여졌다.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범죄자를 내가 어떻게 이해해. 그 속을 내가 어떻게 알아. 자기 노래를 좋아해주고 자기를 좋아해주는 팬들의 마음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그 속을 내가 어떻게 알아.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면서 사랑 에세이를 두권이나 출간하고 인스타에는 아름다운 글귀와 사진만 올리던 당신의 속내를 내가 어떻게 알아. 진장 진장 싸이코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싸이코를 넘어 범죄자였네.
3년 전 그는, 내가 그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내고 짓밟으려 했다. 생각보다 힘있는 뮤지션이었던 그의 악행을 공개비난하거나 고발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과 인맥을 유지하기 싫었다. 그가 혹시나 던져줄 지도 모르는 콩고물따위, 그런거 기대하는 인생 살고싶지 않았다. 음악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의 모든 것을 끊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당시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주고 재워주고 보호해주던 ASMR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3년이 흘렀고, 나는 ASMR 유튜버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고, 그는 성범죄자가 되어 경찰수사를 받고 있다. 당시 침묵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그를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완벽하게 선한 삶을 살 수는 없어도, 이 말만 마음 속에 되새긴다면 범죄자가 될 일은 없다. 모든 사람 위에 오만하게 살았던 그사람. 팬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고 올라섰던 그사람. 부디 그가 행했던 악행에 비례하는 벌을 받게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