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감사 (Patr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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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처음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 원래의 취지는 매일 감사일기를 쓰면서 하루에 하나 이상씩 감사하다고 여길 일을 찾아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부족한 인간이었던가? 감사는 잠시, 주변의 환경들로 한껏 예민해져 오히려 나의 투정을 늘어놓는 공간이 되어가던 일기장...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두팔걷고 집을 알아보고 가계약을 먼저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새로운 세입자가 나오지 않아도 그 전에 먼저 새 집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다. 나가는 월세가 아까워 이 집에 살아봤자 내게 좋을게 없으니 포기할 건 포기하고 새집에서 다시 근무환경을 하루빨리 조성하는게 중요하다. 이렇게 결단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늘은 드디어...! 방음부스 업체들에 전화도 했다. 대략적인 방 넓이에 맞게 부스를 제작했을 때의 견적을 물었다. 확실한 가로 세로 길이가 나와야 확실한 견적도 나올 수 있지만 싱글(방음의 정도를 따졌을 때 가장 약한 정도로 두께를 지칭하는 용)로 제작시 900만원 전후일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설치를 할 예정이다. 설마 천만원이 넘기야 하겠어...? 넘어도 어쩔 수 없지만. 마음 먹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방음부스를 설치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던게 무려 작년부터인데 그게 가능해지기까지도 몇개월이나 걸렸다. 부스를 설치하고 시간에 덜 얽매이게 되면 자연히 생산성이 높아지겠지. 그 생각을 하니 또 마음이 편해졌다. 이모가 먼저 다음주 금요일에 이사를 하고나면 내 방음부스를 설치하고, 곧바로 나도 이사를 할 생각이니 빠르면 4월 말부터, 늦으면 5월초에는 이제 새 집에서 부스를 활용해서 일할 수 있겠지. 작년에 생방송 하면서 "방음부스 살 돈 후원 해주십쇼!" 하면서 모았던 돈도 이제서야 제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나의 고구마 감자 바나나 망고 등 식비로 횡령되었었지...
편집자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서로 파일을 공유하기로 정한 시간표가 있는데 이번주는 나의 사정으로 많은 변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해를 구하며, 하루 빨리 작업실을 새로 꾸리고 약속한 일정에 맞출 수 있게 일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잠시 뒤 편집자에게서 카톡으로 선물이 도착했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사할 집을 알아보면서 많이 피곤할텐데 체력을 챙겼으면 하는 마음에 보내는 작은 선물이라며 사과즙을 보낸 것이다. 아니... 진짜 뭐지? 왜 이쁜 사람은 더 더 더 이쁜 행동만 하는 걸까...? 이미 일도 완벽하게 해주고 있는데 무슨 선물까지 보냈냐고, 너무 고맙지만 다음부터는 이렇게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선물을 받고 너무 좋아하기만 하면 다음에 또 반드시 보내야ㅜ하나 부담스러워할까봐 하는 말이라고, 어쨌든 너무 너무 고맙고 보내준 사과즙 맛있게 잘 먹겠다고 했다. 행복해졌다. 사람때문에 받던 스트레스가 사람으로 풀리는 것 같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매일 나의 내밀하고 저급한 내면을 드러내고 공감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후원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는데. 그간은 세상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층간소음 그것은... 그만큼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세상일은 절대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기왕이면 감사한 시선에서 바라보자는 다짐을 다시 시작한 하루. 물론 난 또 찡얼대고 불평하고 슬퍼하고 화내겠지만, 그래도 많은 순간 긍정적 시선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