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Patr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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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할 정도로 무서운 일이 연달아 생기고 있다. 처음으로 야외 쇼룸에서 촬영을 하러 갔다. 늦은 시간 혼자 다른 건물 실내에서 촬영을 하는 건 처음이어서 여러가지로 긴장되긴 했지만 별일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결론만 얘기하자면 내가 실수로 불을 내서, 자칫하면 건물도 다 타고 나도 죽을 뻔 했다.
원래 소품으로 비치되어 있던 캔들을 창가에 켜고, 보슬보슬 털이 달린 커다란 소품을 침대 가장자리에 두었다. 배치해놓고 다시 정면으로 돌아 카메라를 바라보며 화면 구성이 어떤지 보고 있는데, 그 보슬이가 창가쪽으로 휘청 하는거였다. 어? 어어? 초로 넘어지면 불 붙을 것 같은데? 생각하며 뒤돌아 넘어지는 보슬이로 손을 뻗었지만 그대로 캔들 위로 넘어졌고 0.0001초만에 불이 화르르륵 붙었다. 민들레 홑씨같은 소품이었던 보슬이는 정말로 순식간에 엄청나게 크게 불이 붙었고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크게 불을 낸 적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침대, 매트리스. 베개 등 불탈 수 있는 것들로 가득찬 쇼룸 아닌가. 불이 붙는 속도만큼 내 손도 빠르게 움직였다. 안돼 안돼 안돼 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으며 불붙은 보슬이를 집어서 연소될 수 있는 물품들이 없는 마룻바닥 쪽으로 가져가 흔들며 바닥에 미친듯 두드렸다. 너무나 다행히 불이 꺼졌는데 꺼지고 난 후에도 그 상황이 너무 얼떨떨하고 무서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무 큰 불이었다. 안꺼지고 옮겨 붙었으면 손쓸 수 없을 만큼, 꺼진 게 신기할 만큼 큰 불이었다. 안돼 안돼 하는 말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진짜 절대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건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일이었어.
손이 떨렸지만 이미 쇼룸 여기저기 재가 잔뜩 날려 있는 상황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청소도 촬영도 밤드시 해야만 하니까. 나밖에 없는 그 건물에서 1층을 오가며 행주를 빨아가며 재를 털고 닦았다. 계속 반복했더니 촬영이 가능할 정도까지 정리가 되었다. 촬영을 하는 중간 중간에도 계속 털고 닦았다. 눈에 보이는 재는 다 닦아내려고 온힘을 다했다...
쇼룸에 도착한지 다섯시간째. 촬영 막바지가 되니 남은 기운이 없었다. 청소와 촬영을 합쳐 다섯시간째 서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다리도 발바닥도 너무 아프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했다... 가까스로 수습을 하긴 했지만 그 순간의 충격적이고 무서운 장면은 여전히 남아있고, 월요일이 되면 사장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야 하는 과제가 있고, 추가 청소로 발생할 비용들을 부담해야 하는 일까지. 한순간의 실수로 너무 큰 스트레스 요인들이 생겨버렸다.
교통사고도 불도, 아무리 내가 덤벙대고 덜렁댄다지만, 실제로 이렇게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들이다. 그런데 연달아 이틀에 걸쳐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늘이 내게 경고라도 하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졌다. 이게 정말... 무슨 일이지? 나라는 애는 도대체... 뭐하는 애냐...? 뭐지?
무서워서 오늘 밤은 잠이 안올 것 같다. 놀란 가슴을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