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Patr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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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수능일이 될 때마다 그 날의 내가 기억난다. 점심 도시락으로는 카레를 싸 갔었고 사회탐구 영역이 너무 어려워서 푸는 내내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었다. 12년을 마무리 짓는 오늘 하루의 시험이 이럴 수는 없다고,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험장을 나서는 문에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거기엔 엄마,아빠도 있었다. 기대와 불안이 가득한 눈을 한 채 나를 맞아주었었다.
그 뒤로는 너무 혼란스러웠던 시간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저 너무 울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 뿐. 나는 사회탐구 영역을 망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채점까지 엉망으로 하면서 예상등급 7,8,9를 찍어버렸다. 니가 채점을 잘못했을 거라고 다시 정신 가다듬고 한번 더 채점해 보라는 이모의 전화에도 그저 엉엉 울기만 했다. 확인해봐도 그대로이면 어쩌나 무서워서 시험지를 건드릴수조차 없었다. 걸려오는 친척들의 전화를 엄마는 애써 무시했다. 엄마는 내게 차가운 표정을 지었고 방에서 우셨던 것 같기도 하다. 아빠는 어디에 있었더라? 답답한 마음에 나가셨었나? 집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나는 펑펑 울며 엄마에게 빌었다. 나 그냥 진주에 있는 대학 아무데나 가겠다고. 재수만은 시키지 말아달라고. 나는 이 공부가 더 하기 싫다고. 살면서 그날만큼 많이 운 적은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물안경에 물이 가득찬 것 처럼 시야가 눈물로 울렁거렸다니까 정말로.
결과적으로는 시험을 잘 못보긴 했어도 7등급 이하를 받을 만큼 망친 것은 아니었으며 그건 가채점 실수였고(이모는 이 일로 나의 덜렁거림이 예사 수준을 넘어섰음을 진작 알게 되었다) 강제 재수를 피해 입학할 수 있게 된 대학교에 눈물날 만큼 고마웠다. 물론 그런 감동과 고마움은 금새 잊은 채 이런 저런 열등감과 부족한 애교심으로 방황하는 시간도 보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들 모두를 통틀어 ‘다 지나가리라’ 였다. 고통, 인내, 좌절, 슬픔, 환희, 다시 또 고통, 좌절... 그 수많은 감정이 담긴 시간들도 결국은 지나갔다. 수능날이 될때마다, 이날의 차가운 공기를 마실 때마다, 내 머리에는 고등학생 시절의 수험생활부터 대학교 졸업까지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당시에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지을 것만 같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그저 가슴시리게 그리운 추억일 뿐이다. 나는 공부, 대학과 크게 관련은 없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가채점 실수로 세상이 무너진 듯 엉엉 울던 은비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은비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 사람이 될지.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이렇게 올해의 수능도 지나갔다. 겨울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