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파먹기 (Patr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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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번 이야기하고 있지만 10월은 '안식의 달'이자 '강제 절약의 달'로 지내고 있다. 일은 적게 하고 있는데 동시에 은자를 구매하게 되면서 유례 없던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 중고 판매라든지 벼룩시장 참여라든지 소소하고도 새로운 절약 경험들을 하면서 오히려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의외라면 의외인 것이다. 좌절스럽거나 답답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게임과 미션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게 또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달에는 이만큼을 소비해야만 했는데 이번 달에는 줄였어!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걸 해냈어! 하는 성취감이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전에 내가 얼마나 '불필요한' 지출이나 낭비를 해왔었는지도 돌아보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평소같으면 나는 식량이 떨어지기 전 미리 미리 장을 보는 편이다. 예를 들어 고구마가 한봉지 남으면 마트에 가서 두봉지를 더 사오고, 오렌지가 한봉지 남으면 마트에 가서 한봉지를 더 사오는 편으로 음식이 집에 떨어지게 두지 않는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일까? 식량이 떨어지는 상황을 걱정해 항상 넉넉하게 비치해두는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꼭, 결국에는 버려지는 양이 생긴다. 예를 들어, 지방 집에 오랜 시간 다녀오게 되면서 식량들이 상한다든지. 이모 집에 다녀오게 되면서 상한다든지. 계속 먹고싶을 줄 알고 사놓았는데 막상 먹고 싶지 않아 썩힌다든지. 버리지 않으려고 많이 먹다보니 살이 찐다든지 (이게 최악이군!)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10월은 절약의 달이다. 나는 냉장고에는 별로 남는 음식이 없는 편인데 냉동실에는 비건 식품들이 많이 차 있는 편이었다. 비건 오뎅, 비건 청크, 비건 스테이크, 비건 햄. 그리고 '언젠가 유튜브 컨텐츠로 써야지~!' 하고 사놓은 분모자 당면들도 있었다. 막상 사두었지만 먹지 않고 미루게 되면서 항상 냉동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할 때가 온 것이다.
벌레 먹은 밤도 어제 다 쪄 먹었고, 감자와 고구마도 다 먹은 지금. 나는 미리 장을 봐두지 않아서 이제 집에 먹을 것은 냉동실에 있는 것들 뿐이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궁상맞은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재미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냉장고 음식들로 버텨야 해' 라고 생각하면 궁상맞을 수 있지만, '냉장고 파먹기를 해내야 해!' 라고 생각하면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오늘 그 첫 미션 수행을 위해서 나는 점심에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떡볶이를 만들려고 보니 예~전에 사놓았던 '말린 도토리'도 있었다. 고추장도 냉장고에 참으로 오래 있던 것이었다. 고추장,고춧가루,케첩등으로 만든 떡볶이 소스에 비건 식품들을 골고루 넣고, 떡 대신 분모자 당면을 넣고, 말린 도토리를 물에 불려 추가로 넣으니 쫄깃 쫄깃 오독 오독 너무 맛있었다. 저녁은 비건 스테이크와 오렌지를 갈아 만든 쥬스를 먹었다. 오렌지는 얼마 전 마트에서 사왔는데 너무 너무 맛이 없어서 도저히 그냥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예전 같으면 도저히 먹을 수 없다며 버렸을 텐데, 스테비아와 깔라만시 파우더를 넣고 쥬스로 갈아 마셨더니 정말 상큼하고 맛있었다. 심지어 깔라만시 파우더도 옜날에 사놓고 여전히 한가득 남아 있는 것이었으니 냉장고 파먹기의 대상인 셈이다. 와, 이거 정말 너무 재밌는걸. 먹을 것이 이렇게 한가득이었는데 항상 부족하다 생각해서 장을 봤었다니.
여전히 냉동실에는 남은 식품들이 가득하다. 달달한 군고구마가 생각나긴 하지만 냉장고 파먹기로 만든 요리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맛있었으니 이 미션이 끝날 때 까지만 참아야 겠다. '버리고 비우기' 이것에 중독되기 시작하면 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된다.
여러분의 냉장고에는 잊혀진 음식, 파먹어야 할 음식이 무엇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