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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끔찍한 미해결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던 사건의 범인이 며칠 전 밝혀졌다. 무려 30년 전 사건으로 이미 공소시효도 다 끝난 사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극장에서 '살인의 추억' 이라는 영화로 처음 알게 되었던 그 사건. 누군가는 저질렀는데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범인의 흔척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사건. 그 사건의 범인이 세월이 흘러 드러나게 된 것이다. 

땀 한방울에서 DNA를 체취할 수 있게 된 과학의 발전 덕분.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증거를 보관하고 추적해 온 경찰들의 끈기와 노력. 연일 각종 매체에서 두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사실은 시간의 힘이다.

황우석 박사 사건으로 한국 전체가 떠들썩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등하교길에 아빠와 차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잊혀지지 않는다. 황우석 박사는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 하고 그의 반대편 사람들은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팽팽하게 싸우던 그 때. 일주일 뒤면 객관적인 결과가 나오고 과연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아빠. 일주일 뒤면 누가 거짓말했는 지 뻔히 알 수 있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어? 이렇게 대국민을 상대로? 누군가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잖아. "

"그렇지."

"일주일 뒤면 알 수 있는데... 어떻게 그러지? 지금 이렇게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데...? 내가 다 혼란스럽다. 타임머신을 타고 일주일 뒤로 가서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건지, 도대체 왜 그러는건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보고 오고 싶은 기분이야... 황우석 박사가 거짓말 하고 있는거면 저사람 제정신 아닌 거 아니야? 아니 저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데 저게.. 거짓말이라고?? "

"거짓말이면 또래이지 또래이 (아빠는 사투리를 써서 또라이를 또래이 라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 황우석 박사의 거짓이 드러났다. 그 사건은 여전히 나에게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엄청난 진리를 알려준 사건으로 남아 있다. 지금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력으로 표현해보자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시간은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되돌아갈 수 없고, 누구에게나 유한하고, 그 자체로 무한하다.

그리고, 나의 유한한 시간 안에서는 영원히 미재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그 사건이 지금 밝혀지고 있다. 해결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모방범'이라는 책을 읽은 이후로 나는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에는 해결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황우석 박사의 거짓말이 밝혀지기 까지 걸린 시간보다 훨씬 더 긴, 몇십년의 시간이 지나 결국 범인 이춘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 긴 시간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을까. 어떤 생각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시간을 끝내버렸을까. "이제 풀지 못할 범죄는 없습니다" 배상훈 교수님이 뉴스에서 하신 한마디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나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정의감 따위는 전혀 아니다. 시간에 대한 경외감에 가깝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변화와 발견, 발전들에 대한 어떤 감정인데. 언젠가 정리해서 말할 수 있게 되면 좋겠는데.

이제 사람들은 또 다른 사건인 '개구리 소년'의 진범을 찾아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피해자는 존재하고 가해자는 사라졌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모든 것을. 나의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나는 점점 어째서인지, 시간도 공간과 같은 개념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Comments

rambam

I did see something about the case being solved so long after it happened, it's good that the families know who did it so they can properly deal with what happened.

Anonymous

汗1滴で犯人が分かる時代になったのか…凄い 被害者やその家族のためにも犯人が明らかになってよかった

Anonymous

I didn't knew "Memories of murder" was based on a true story, it's even more scarier now. Not so long ago i've watched a korean thriller named "Confession of murder" and the prescription/statute of limitation was the key element of this movie, very good thriller by the way. It's a good thing for the families to have justice done. I still think, the perfect crime is not the unsolved one but the one, solved with the wrong culprit. Interesting diary !

Ronny [Rendition]

The murderer being brought to justice hopefully can give the families of the victims a late but much needed closure. I very much like your philosophical take on time as being infinite in itself, but finite for each and every one of us. This knowledge will lead to the realization that the most valuable things to have in life are not wealth, money and posessions. The most valuable things we can have in life are health, time and good people to spend this time with. I wish the families of the victims have all of these to help them get over their losses.

Anonymous

과학은 대단한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뛰어넘어 권력이나 이익 앞에서 지록위마 하는 작금의 현실에 입이 쓰네요.. 그 고사성어 뜻을 알게되었을때 "아 옛날 사람들 왜 저래?" 했었고든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