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해후 (Pixiv Fanbox)
Published:
2020-03-12 10:01:09
Edited:
2020-03-12 11:30:20
Imported:
2022-04
Content
*아래의 번역은 "와타오시 번역"의 협력으로 실현되었습니다.고마워요, "와타오시 번역"
막힘없이 착착 준비를 진행하다보니, 어느새 교황 성하가 도착하는 날이 찾아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부드러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클레어 님을 대표로, 제도의 경비 담당자들은 교황 성하를 맞이하기 위해 제도의 서문까지 나와 있었다.
릴리 님은 다른 용무가 있는 모양이라서 이 자리에 없었다.
그 외, 마중을 나온 인원 중에는 유 님과 미샤, 리세 님의 모습도 보였다.
“늦네요…….”
클레어 님의 혼잣말대로, 벌써 도착 예정시각을 한 시간 가까이 넘겼다.
21세기 지구처럼 분단위로 쪼개지는 스케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슬슬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만큼 늦어졌다.
“걱정되시나요?”
“당연하죠. 교황 성하는 지금 암사…… 흠흠, 그 소문이 있잖아요?”
클레어 님은 암살이라는 단어를 꺼내려고 했다가 바로 얼버무렸다.
경비 담당자들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있는 곳에서 그걸 입 밖에 내는 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의외로 오는 도중에 늦잠을 잤다든가 그런 걸지도 몰라요.”
“무슨 레이도 아니고, 교황 성하가 그런 얼빠진 짓을 할 리가 없어요.”
클레어 님은 여전히 걱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해. 언제나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차리고 있는데.”
나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우는 시늉을 했다.
“자, 잠깐만요. 아뇨,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레이. 당신한테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지금 건 실언이었어요. 철회하고 사과할게요. 그러니까 울음을 멈추고——.”
“아니요! 저 상처받았어요! 클레어 님이 키스해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예요!”
나는 꺼흑꺼흑 우는 시늉을 계속했다.
“바,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세요. 집 안이라면 또 모를까 남들 눈앞에서 키스는 안 된다고 그렇게나.”
“싫—다—구—요! 쪽쪽 해주지 않으면 용서안할 거예요~”
계속해서 생떼를 부려봤지만,
“……레이. 당신 사실은 우는 거 아니죠.”
아, 클레어 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데헷.”
“데헷이 아니라고요. 지금 무슨 장난을 치는 건가요. 지금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라고요.”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니까 더더욱 그런 거예요. 클레어 님."
나는 장난을 멈추고서 말했다.
“너무 낙관적인 것도 좀 그렇지만, 너무 비관적이 돼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어떤 책에서 읽었던 거지만 이럴 때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면서도 낙관적으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간단한 듯, 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네요…….”
클레어 님이 말을 이었다.
“그럼 한번 생각해볼게요. 현재 상황에서 최악의 사태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교헝 성하가 이미 돌아가신 상황일까요.”
“그 상황에서 낙관적으로 행동한다면?”
“상황을 살피러 누군가를 보낸다든가.”
그렇게 우리들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을 때,
“전합니다! 교황 성하 일행이 마물들에게 공격받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원군을!”
긴장감이 퍼져나갔다.
“적의 규모는?!”
클레어 님이 날카롭게 물었다.
“위협도 중급 정도의 마물이 열 마리쯤 됩니다.”
“1번 경비부대부터 3번 경비부대를 원군으로 파견합니다. 남은 부대는 문을 지키도록 하세요.”
클레어 님의 지시에 따라 원군이 편성됐다.
“당신도 같이 가주겠어요, 레이?”
“하명하신다면.”
“부탁할게요.”
“네.”
나는 원군에 동행하게 되었다.
원군 구성을 들여다보면, 제국에 있는 교회가 소유한 50명쯤 되는 병사와, 제국병사가 100명 정도.
바우어에서 온 유학생들은 이번엔 나 말곤 전부 집 지킴이다.
풍속성 마법사가 원군 전체에 행군속도 상승 버프를 걸어서, 굉장한 스피드로 가도를 달려갔다.
“저기 보인다!”
선두에서 달리던 누군가가 외쳤다.
교황 성하 일행이 마물에 포위되어있었다.
방진을 짜고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던 상황인 모양이다.
“공격하라!”
원군을 이끄는 책임자가 각 부대에 지시를 날렸다.
부대는 대부분 마법사로 구성되어 있지만 개중에는 검을 쓰는 자도 있는 것 같았다.
백병전을 거는 자들을 전위에 세우고, 후위를 맡은 마법사들이 마법탄을 발사했다.
마물들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배후를 찌르는 공격에 뒤늦은 반응을 보였다.
적의 3할 정도가 쓰러졌다.
“우리도 공격한다!”
교황 성하의 호위병들도 공격에 나서자 협공하는 모양새가 됐다.
마물의 숫자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사, 살았다…….”
마지막 한 마리를 쓰러트리자, 호위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그러나,
“아직입니다!”
나는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서 얼음 화살을 날렸다.
“켁…… 감이 좋은 녀석이 있구만.”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라서 내 공격을 피한 검은 그림자의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보였다.
“마족이라고?!”
“인간 따위가 이 몸을 어떻게 부르든 상관은 없지만 이 몸에게는 플라토라는 이름이 있다고. 똑똑히 기억해둬.”
“플라토?! 삼대마공 중 한사람이잖아!”
아리스토와 다른 복장이라기보다는, 그저 짐승 가죽을 몸에 둘렀을 뿐인 차림새를 한 그 마족은 아무래도 삼대마공의 일원인 모양이다.
말투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아리스토와 비교하면 상당히 껄렁한 느낌이다.
마족과는 좀처럼 마주할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연전연투잖아.
“자아 그럼 이 몸의 힘을 보도록! 그리고 죽어라!”
플라토는 곤봉처럼 생긴 무기를 휘둘러서 지면을 내리쳤다.
지면이 파도치듯 터져나가고, 사람들 전원이 뒤로 넘어가면서 단번에 행동불능에 빠졌다.
“쳐 먹어라!”
플라토가 손을 위로 치켜들자, 그 손짓에 따라 지면에서 송곳처럼 생긴 돌들이 솟아올랐다.
지속성 중급 마법인 어스파이크지만 말도 안 되는 갯수다.
플라토가 발동한 어스파이크의 수는 적어도 100개는 넘었다.
“머드 소일!”
돌로 된 송곳이 사람들을 공격하려는 찰나, 그 틈새를 찌르며 나는 어스파이크를 부드러운 진흙으로 바꿨다.
아무리 내 마법 적성이 높다고는 해도 100개를 넘는 어스파이크를 새로이 덮어 쓰는 일은 꽤나 힘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전멸했을 것이다.
“제법이잖냐. 그렇군, 네놈이 레이 테일러구만? 아리스토 자식이 놓쳐버렸던 놈인가.”
마력이 급격히 소모되는 걸 느끼고 있자니, 플라토가 나를 눈여겨본 모양이었다.
큰일이다.
“아리스토 자식은 분명 여유를 부리다가 실수를 했었겠지만, 이 몸에겐 어림도 없다. 확실하게 죽여줄테니까 말이다.”
플라토는 몽둥이를 고쳐 쥐더니, 그대로 휘두르면서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빠르다!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경비병 몇 명이 플라토의 진로를 막아서며 창을 겨누고,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발사했다.
“시건방진 놈들!”
그러나 플라토는 그 모든 공격을 그냥 몸으로 받아내면서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전부 날려버렸다.
“자아, 끝이다—!”
코앞까지 닥쳐온 플라토는 승리를 확신한 듯이 웃으며 나에게 몽둥이를 내리쳤다.
“쥬데카!”
플라토가 몽둥이를 내리치는 자세 그대로 얼음 덩어리가 됐다.
“어스파이크!”
그리고 방금 플라토도 썼었던 어스파이크가 얼음 덩어리를 향해 솟아오르며 플라토를 산산조각 내려고했다.
내 주력 마법, 연속마법 고퀴토스다.
“히야, 위험했군.”
그러나 어스파이크가 꿰뚫기 직전에 플라토는 빙결상태에서 빠져나왔다.
힘으로 얼음을 부순 다음 날개를 이용해 공중으로 도망쳤다.
“이 몸이 이런 실수를…… 방심하지 않겠다고 말하자마자 이 꼴이냐고. 인간 녀석들은 무섭구만, 정말이지.”
플라토는 공중에 뜬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뭐, 슬슬 한계 아닐까나? 인간은 마족과 달리 마력 용량이 작으니까 말야. 그정도로 마법을 써댔으면 슬슬 마력도 텅텅 비었겠지?”
분하지만 플라토의 말이 맞았다.
100개가 넘는 마법을 동시 발동한데다 적이 사용한 마법을 강제로 덮어씌웠고, 거기에 상급 마법을 2연속으로 쓰면서 마력을 연이어 소모했다.
완전히 바닥난 건 아니지만, 저 녀석한테 데미지를 줄 수 있을 만한 마법은 앞으로 잘해야 한두 번이다.
이건 큰일이다.
내가 퇴각을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엄숙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차올라라.”
주변이 빛에 휩싸였다.
그 빛은 마치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포근하면서 부드러웠고, 빛이 닿은 장소에서부터 힘이 넘쳐 흘러나왔다.
쓰러져있던 병사들이 하나 둘씩 일어났다.
나도 바닥나 있던 마력이 완전히 회복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교황 성하의 축복이다! 모두들, 우리에게 패배는 없다! 마족을 토벌하라!”
교황 성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성직자가 소리 높여 외쳤다.
그와 동시에 호위병과 교회의 병사, 제국 병사들이 우렁찬 외침을 터트렸다.
지금 건…… 범위 회복?
그것도 마력까지?
“칫…… 결국 죽이지 못했나. 뭐 됐어, 오늘은 인사나 마찬가지였다고. 그럼 이만.”
우리들이 태세를 정비하는 걸 보자마자 플라토는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도망가는 거야?”
“헷, 값싼 도발이구만, 엉? 그 건방진 입은 이 몸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되고나서나 놀리라고.”
이대로 녀석을 쓰러트리고 싶었지만 플라토는 아무래도 도발에 넘어가주지 않을 모양이다.
마치 비웃듯이 말하고서 동쪽 하늘로 날아갔다.
“방금 그건 교황 성하의 힘인가……?”
“기적이다…….”
병사들이 힘을 모아 교황 성하를 칭송했다.
당연하겠지.
여차하면 전멸할 뻔 했던 상황이었으니까.
궁지에 몰린 상황을 구해낸 교황 성하의 마법은 병사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레이 테일러, 이쪽으로.”
방금 전에 병사들을 독려하며 외쳤던 성직자가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무슨 용무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성직자를 따라갔다.
“시간을 벌어주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교황 성하의 그 마법은 효과는 발군이지만 발동까지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성직자 씨는——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내 노고를 치하했다.
“아뇨, 저야말로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굉장하네요, 교황 성하의 마법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목소리는 안쪽에서 들려왔다.
“교, 교황 성하?!”
“괜찮아요, 로나 사제. 저는 어차피 언젠가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해야 하니까요.”
안쪽에서 내려져 있던 발이 위로 젖혀졌다.
그곳에는 나와 꼭 닮은, 그러나 결정적으로 분위기가 다른 소녀가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 테일러. 제가 교황입니다.”
그 소녀는 아주 약간의 표정변화도 없이 깜짝 놀랄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클라리스 레페테 3세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