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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국에 거역하는 거냐?!” “어머,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요? 저도 당신도 그저 학생이에요. 아니면 당신의 이름이 제국이었던 걸까요?”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도발하는 클레어 님. 전 악역영애답게, 몹시도 사악한 표정이었다. 상대 남학생은 기가 꺾여서 되돌려줄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은 제국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인 제국 국학관이다. 팔짱을 낀 채로 당당히 서 있는 클레어 님의 뒤편에, 필리네가 주저앉은 채로 떨고 있었다. “저, 저기…….” “괜찮습니다. 여기는 클레어 님에게 맡기도록 하죠.” 나는 필리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 다음, 그녀에게 속삭였다. 필리네는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일단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그런 소릴 하는 거냐?!” “이거 면목 없네요. 저는 오늘 막 편입한 참이라 당신에 대해선 손톱만큼도 모르겠거든요.” “젠장……. 바보 취급하다니.” 3류 양아치 같은 대사를 하는 남학생이 적의를 가득 담은 눈으로 우리를 노려봤다. 편입 첫날부터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됐는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야기는 몇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오늘부터 제군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된 편입생들이다. 모두들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교사는 우리를 간단히 소개한 뒤, 자리에 앉히고선 바로 강의를 시작했다. 자기소개나 뭐 그런 비슷한 걸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우리들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일단 그대로 수업을 들었다. 편입생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수업 진도를 반복한다든가, 그런 배려는 전혀 없었다. 지금 수업은 교양 강의인데, 왕립학교보다 내용도 충실하고 수업 진도도 빨랐다. 편입생들은 기본적으로 제국에 대한 교양지식이 거의 없다.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편입생들은 그저 수업을 따라가는 데에도 필사적이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을 때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진이 빠져서 녹초가 됐다. “이상이다. 그럼 또 다음 시간에.” 교사는 사무적으로 말하고선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 이 강의를 따라가는 건 꽤나 힘들 것 같구나, 편입생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기저기, 너희들 바우어에서 왔다며?” “혁명이 일어났다는 게 진짜야?” “저기, 이름 가르쳐주라.” 점점 우리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무뚝뚝한 느낌이었지만, 국학관의 학생들은 왕립학교랑 그다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할게요.” 이 반에 소속된 바우어 편입생은 5명. 클레어 님, 나, 그리고 라나, 이브, 요엘이다. 유 님이나, 아파라치아에서 국학관으로 왔을 레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다른 반인 모양이다. “저는 클레어 프랑소와. 부디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먼저 클레어 님이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대자, 교실 안이 술렁였다. “혁명의 영웅이잖아!” “혼자서 천명의 왕국 병사를 격퇴했다는 게 정말이야?” 역시 클레어 님은 제국에서도 꽤나 유명한 것 같다. 조금 이상하게 부풀려진 부분도 있는 모양이긴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혁명은 시민들이 일으킨 거고요.” “하지만 엄청 강하다며?” “아무리 그래도 천명을 상대할 수는 없어요. 그건 과장이네요.” “저기저기, 도로테아 폐하랑 비교하면 누가 더 쎄?” 클레어 님, 첫날부터 엄청난 인기다. “일단은 자기소개를 마저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레이?” 클레어 님의 재촉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 테일러입니다. 클레어 님의 아내입니다. 클레어 님은 제 아내니까 넘보지 말아주세요. 확 깨물어버릴 거예요. 크르르릉.” “잠깐 레이, 당신?!” 클레어 님이 당황했다. 원래 이런 건 처음이 중요하다. 확실하게 내 거라고 소유권을 주장해놔야 한다. “에, 뭐야뭐야? 클레어는 연인이 있는 거야?” “경어를 붙여서 부르네.” “에~ 레이는 재밌네!” 어쩐지 반응이 좋다. 농담이나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다, 다음 사람이에요. 라나?” “네~” 라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나 라아나입니다. 레이 선생님을 클레어 선생님한테서 뺐으려고 획책하고 있습니다아~. 악녀입니다. 잘 부탁해~” 라나는 찡긋, 하고 윙크까지 붙이며 그렇게 말했다. “에, 삼각관계?” “쩔어, 여자끼리의 수라장이잖아.” “점심드라마 같아.” 이것도 어째 반응이 좋다. 아니 근데 잠깐만 기다려봐. “점심드라마?” “어? 모르는 거야? 점심 무렵의 드라마라는 소설. 질척질척한 복잡한 인간관계를 그려낸 걸작이야. 다음에 빌려줄게.” “아, 응. 고마워.”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어! “자 다음, 이브?” “이브 눈입니다. 잘 부탁해.” 이브는 여기서도 냉담한 태도다. “빙설계 미소녀 떴다!” “저기저기, 사탕 먹을래?” “밟히고 싶어.” 이브까지도 좋은 반응. 아니 그보다 방금 변태가 섞여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요엘?” “……요엘 산타나다. 팔 힘에는 자신이 있다. 잘 부탁한다.” 요엘은 무난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 살짝 붙임성이 결여되어 있기는 했지만. “쿨한 남성이네.” “무뚝뚝한 태도도 나름의 맛이 있지.” “밟히고 싶어.” 요엘도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아니 근데 역시 변태가 섞여 있잖아. 뭐, 대충 그런 느낌으로 우리들은 시원스레 클래스에 섞여들었다. 엄청 경계 당하거나 고립 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다양한 이민족들이 함께하는 국가라서 그런가. 우리가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려고만 한다면 쉽게 받아들여 주는 모양이다. “우리들도 자기소개를 해볼까—” “나는 요한!” “잠깐, 새치기 하지 말라고!” 시끌벅적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 조용히 떨어져 있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필리네, 너도 자기소개 해봐—” “아……, 네, 네에.” 필리네라는 이름에 클레어 님과 내가 시선을 교환했다. 내가 끄덕였다. “피, 필리네 나입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심약해 보이는 분위기를 띠는 그 소녀는, 쭈뼛거리며 자기소개를 마쳤다. 곧바로 다시 자리에 앉더니 책 뒤로 숨어버렸다. 내성적인 아이인 모양이다. “필리네는 말이지, 저렇게 보여도 도로테아 폐하의 딸이야. 하나도 안 닮았지만.” “그렇군요.” 역시 그녀가 맞았다. 우리들이 공략할 상대다. 조금 더 그녀와 커뮤니케이션을 나눠보자, 라고 생각했을 때. “아까부터 시끄럽다고!” 난폭한 외침이 울렸다. 그쪽을 보자, 척 보기에도 양아치처럼 보이는 남학생이 책상위에 다리를 걸치고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오, 오토…… 있었구나. 너도 자기소개를 하면——” “아앙?! 얕보는 거냐, 짜샤!” “아, 아니, 미안…….”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오토라고 불린 남학생은 아무래도 문제아인 모양이다. “그보다 말이지~ 저 롤머리 자식들은 제국의 적이잖아? 환영 분위기 내지 말란 말이다.” 오토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불량한 걸음걸이로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키가 크다. 180cm는 되지 않을까. 체격도 제법 튼튼해서 마치 바위덩어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오토 씨라고 하는군요. 저는 클레어 프랑소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칫, 잘난체하지 말란 말이다, 계집애가. 어차피 네 녀석도 저기 필리네처럼 이름만 그럴싸한 장식품 아가씨 아니냐?” 불쑥 얼굴을 내밀면서 클레어 님을 내려다보는 오토. 내가 당장이라도 마법을 때려 박아 줄까, 하고 생각했을 때 클레어 님이 시선으로 나를 제지했다. “장식품? 그러네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헷, 역시 그렇구만.” “하지만 당신 머리보다는 훨씬 낫지요. 그 텅 빈 머리와는 비교할 수 없어요.” 오토는 한순간 벙찐 표정이었다. 하지만 바로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이 새끼, 죽고싶냐?!” “어머머, 정말로 그 머리는 장식품이네요. 우리들한테 손을 댄다면 외교문제로 번질 거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건가요?” “알게 뭐냐!” 오토는 곧바로 팔을 올리더니 클레어 님을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그러자 클레어 님은 부드럽게 몸을 피하면서 스치듯 발을 걸었다. 오토는 그대로 꼼짝없이 바닥을 굴렀다. “이, 이 자식…….” “어머, 죄송하게 됐네요.” “이젠 안 봐준다——!” 오토는 격분해서 클레어 님에게 다시금 덤벼들었다. 그러나——. “허억……, 허억……헉……. 이 자식…… 젠장…….” 몇 분 후, 클레어 님에게 스치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농락당한 건 오토 쪽이었다. “대단할 것도 없네요. 그 불량해 보이는 모습도 장식이군요.” 클레어 님은 툭툭 어깨를 털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오토는 뭔가 격투기를 배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호신술을 교육받았고, 혁명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건들을 겪으면서 실전을 경험해온 클레어 님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오토는 품 속에서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마법 지팡이——! “클레어 님, 위험——” 나도 모르게 그 사이로 끼어들려고 했을 때, “안됩니다!” 클레어 님의 앞을 가로막으며 선 사람이 있었다. 필리네였다. “앙?! 뭐냐 필리네, 방해하지 말라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지나칩니다. 마법을 쓰다니!” “방해라고 말했잖아!” “꺄악!” 오토가 필레네를 냅다 밀쳐버렸다. 그 순간, 나는 그가 뭔가 말하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필리네 앞으로 클레어 님이 가로막듯 나섰다. “마법인가요. 좋아요. 어디 한번 써보는 게 어때요?” “바……바보 취급하다니…….” 자 여기서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간다. “이거나 먹어라!” 오토가 마법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 끝에서 화염 화살이 발사되며 클레어 님을 향해 날아갔다. 클레어 님은 그 화살을 향해 뛰어들었다. “위험해!” 필리네의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뭐라고?!” 고속영창으로 생성한 화염 화살로 오토의 화염 화살을 상쇄시킨 다음, 클레어 님은 그대로 오토에게 달려들더니 그 배를 걷어찼다. “커헉……!” “자 그럼 이제 벌을 받을 시간이에요.” 쓰러진 오토를 향해 빙긋 미소짓는 클레어 님. 아, 저건 엄청 열 받은 거네. 웃고는 있지만 완전히 화난 상태다. 아마 오토가 필리네를 밀쳐 넘어뜨린 것 때문에 인내심의 끈이 끊어진 거겠지. “자, 잠깐! 국제문제가 될 거라고?!” “걱정 없어요. 그저 학생들끼리 다퉜을 뿐. 그렇죠, 여러분?” 매력적인 웃음과 함께 손가락 관절을 뚜둑뚜둑 꺾는 클레어 님. 주변 학생들은 그 박력에 압도당해서 찍소리도 못했다. 이야~ 클레어님, 오늘도 기운이 넘치시네! “외교 문제가 된다고 네 녀석이 그랬잖냐?!” “그야 허풍인 게 당연하잖아요. 겨우 그런 것도 모르니까 당신 머리가 장식품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클레어 님은 마법 지팡이를 꺼내서 오토에게 들이밀었다. 아니, 허풍은 오히려 아무 문제도 없을거라는 클레어 님의 말이겠지만. 아무리 학생끼리라고는 해도, 사망자라도 나왔다가는 큰 일이 나겠지. “참고로 저는 장식일지는 몰라도, 마법 적성은 화속성 높음 적성이에요.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용서해 주시겠어요?” “그, 그만둬……!” “자, 잠깐 기다려주세요!” 겁을 집어먹은 오토의 면상을 향해 클레어 님이 지팡이를 휘두르려고 했던 바로 그때, 필리아가 클레어 님의 팔을 붙잡았다. “뭔가요?” “이제 그쯤에서, 부디……!” “괜찮나요? 당신도 꽤나 저 사람한테 호되게 당했을 텐데요.” “오토는…… 난폭한 부분도 있지만 뿌리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오늘은 조금, 평소보다 예민했을 뿐이라…….” 필리네는 열심히 호소했다. 그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분명 클레어 님이 무서운 거겠지. 나야 저런 모습도 정말로 좋아하지만, 진심으로 화내는 클레어 님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겁을 먹는다. 실제로 우리 주변의 제국 학생들은 가까이 다가올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좋아요. 여기선 당신을 봐서 넘어가겠어요. 조금 과격한 자기소개가 되어 버렸네요. 여러분, 평안하시길.” 그 말만 남기고 클레어 님은 가방을 챙겨서 교실을 나갔다. “……빌어먹을…….” “오토……, 지금 치료를…….” “필요 없어!” 치료 마법을 걸려고 하는 필리네를 뿌리치고서 오토도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자초지종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 저기, 레이 선생님. 클레어 선생님은…… 저렇게 무서운 분이셨어……?” “응? 어디가?” “어디라니…….” 라나가 할 말을 잃었다. 어, 나는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했다는 생각밖에 안드는데. “클레어 님은 뭐, 화내면 무섭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은데? 오히려 너무 사랑스러워.” “그, 그치만…….” “예를 들면, 저기 봐봐.” 나는 교실 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클레어 님이 몹시 겸연쩍은 표정으로 교실로 되돌아왔다. “무, 무슨 일이야 클레어……?” “또 무슨 일이라도……?” 겁 먹은 채로 물어보는 제국 학생들. 그리고 클레어 님의 대답은, “……아직 수업이 남아있다는 걸 깜빡했어요.” 어이쿠, 꼴사나워라.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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