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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음 사람 들어와—. ……자, 빨리 와. 부끄러운 거야 알지만 나도 다 일이라고!”


방과 후, 교실.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면 문화제 때 입을 웨이트리스 유니폼 치수를 재는 중입니다.

교실 한구석에 칸막이 커튼을 만든 다음 거기서 한 사람씩 사이즈 측정을 받고 있습니다.


“자, 다음. 오, 알레어 프랑소와잖아. 이거 운이 좋은걸. 치수를 재는 보람이 있단 말이지.”

“잘 부탁드리겠어요.”

“그래그래. 상의랑 치마는 벗어서 여기 바구니에 넣어 놔. 그런 다음 양 팔을 들고 여기에 서면 돼.”

“알겠어요.”


척척 지시를 내리는 사람은 패션부 부장입니다.

우리 반은 문화제 때 입을 웨이트리스 유니폼 제작을 패션부에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반 애들 중 몇 명이 패션부 부장처럼 다른 애들의 치수를 재고 있었습니다.

저 아이들 역시 패션부입니다.

유니폼 제작을 패션부에 의뢰하고 싶다는 말을 대신 전해준 것도 저 친구들입니다.

역시 좋은 친구는 사귀고 볼 일이네요.

바빠서 그런 건지,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혹은 치수를 잴 대상을 향한 흥미 때문인지, 어느 쪽이든 눈을 번뜩이고 있는 모습은 조금 무서웠습니다만.


“헤에, 역시 검신이라고 불릴 정도는 되는걸. 쓸데없는 군살이 전혀 없어. 아주 예쁜 몸이야.”


상의랑 치마를 벗은 제 몸을 보고서 부장이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어서 조금 재미없네. 너도 일단은 숙녀잖아.”

“남한테 보여주기에 부끄러운 몸을 가진 것도 아닌걸요.”

“그런 말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니.”


왠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하아, 하고 한숨을 쉬는 부장. 그 모습에 저는 커다란 물음표를 둥둥 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됐어. 빨리빨리 측정이나 하자. 자, 이쪽으로 와봐.”

“네에.”


저는 부장 앞으로 다가가 양팔을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린 다음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똑바로 섰습니다.


“정말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탄탄하게 균형이 잡힌 몸이야. 훤칠한 키, 이상적인 굴곡을 그리는 라인, 쓰리 사이즈도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아주 훌륭해.”

“고마워요.”

“혹시 수확제 때 우리 부에서 하는 패션쇼에 모델로 나와 볼 생각은 없어?”

“그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왜?”

“남한테 보여주기 부끄러운 몸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보여주고 싶은 것도 아니라서요.”

“아까워라.”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부장은 막힘없는 손길로 치수를 쟀습니다.


“측정하기 전에 직접 적어낸 사이즈랑 비교하면 키랑 엉덩이가 커졌네. 가슴은 그대로. 반대로 허리 치수는 좀 줄었는걸.”

“그런가요. 조금 아쉽네요.”

“뭐가?”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가슴에 볼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딱히 풍만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나이대 애들과 비교해 보면 비교적 가슴이 작은 편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 지금이 딱 좋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크면 어깨도 결리고 사이즈가 맞는 속옷도 찾기 힘들어서 좋을 게 없거든.”

“…….”


그렇게 말하는 부장의 가슴은 아주 훌륭한 사이즈였습니다.

이런 걸 두고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는 걸까요.

참고로 부장은 짧은 숏컷에 큰 키를 가진 멋진 스타일의 여성입니다.


“자, 이걸로 끝. 다음 애를 불러줘.”

“알겠어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래그래.”


저는 빠르게 다시 옷을 입은 다음,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는 부장의 배웅을 받으며 나왔습니다.


“저기저기, 어땠어?”

“나는 조금 찐 것 같아.”

“나도~.”

“너네 둘 다 별로 찐 것도 아니잖아.”


교실 여기저기선 측정을 마친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측정 결과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학원에 들어올 정도로 재능이 넘쳐도 한창때의 소녀입니다.

이런 화제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죠.


“앗. 알레어도 끝났구나?”

“수, 수고했어요.”

“네. 시몬도 릴리 님도 측정을 마치셨나요?”

“응.”

“네, 네에.”


자리로 돌아오자 시몬과 릴리 님이 있었습니다.

왠지 제 자리는 언젠가부터 룸메이트인 우리 네 명이 모이는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메이는 아직 측정 중인가 봐. 걘 그다지 치수를 재는 보람이 없을 것 같네.”

“시, 시몬 짱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좀…….”

“뭐—? 그치만 스타일이 그렇잖아? 이렇게 쭉—, 평평하잖아.”


시몬이 효과음과 함께 손짓으로 허공에 심플한 실루엣을 그렸습니다.

확실히 메이는 빈말로라도 몸매가 좋다고는 하기 힘듭니다.

굴곡이 거의 없는 스타일은 본인도 조금 신경 쓰는 모양이라, 저는 대놓고 화제에 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슬쩍 얘기를 돌리기로 했습니다.


“시몬은 훌륭한 몸매를 가지고 있네요.”

“알레어가 그런 소릴 해? 너는 그야말로 패션모델 수준이잖아.”

“고마워요. 칭찬해 줘서 기뻐요.”

“……겸손해하는 기색조차 없네.”

“? 칭찬하고 있는 거 맞죠?”

“그건 맞는데!”


그럼 시몬은 뭐에 그렇게 분개하는 걸까요.


“훌쩍훌쩍훌쩍…… 다, 다들 좋겠네요……. 하, 한창 자랄 때라…….”


제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더니 릴리 님이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릴리 님?”

“리, 릴리는 키도 이렇게 땅딸막한 데다, 몸매도 통짜니까요…….”


릴리 님은 시몬과 저를 물끄러미 쳐다본 다음 자기 몸으로 시선을 내리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릴리는 아주 귀엽잖아.”

“맞아요. 릴리 님은 지금이 가장 사랑스러워요.”


시몬도 제 의견에 찬성하는 모양입니다.


“리, 릴리는 좀 더 키가 크고 싶었는걸요. 그리고 더 쭉쭉 빵빵한 몸매를 갖고 싶었어요!”


릴리 님은 시종일관 울상이었지만, 저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 릴리 님은 꽤 키가 작은 편이고, 몸매도 평탄하다고 해야 하나, 메이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굴곡이 있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한참 젊은 나이인데다, 백옥 같은 피부에 화사하고 윤기가 흐르는 훌륭한 은빛 머리카락, 게다가 쉽게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앳된 외모는 설령 바라더라도 손에 넣을 수 없는 분명한 개성입니다.


“레이 어머니도 말씀하셨어요. 릴리 님은 세월이 지나도 앳된 외모라서 부럽다고요.”

“레, 레이 씨는 연륜이 주는 성숙함이 드러나게 됐죠. 크, 클레어 님도 마찬가지지만요…….”


뭐, 그건 맞는 말입니다.

레이 어머니도 클레어 어머니도 학생 시절에 비하면 나이를 먹었지만 그래도 미인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모를 가진 여성이니까요.

저도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되고 싶다고 마음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앗, 어서 와요, 메이. 어땠어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좋은 일이잖아요. 살이 찌지도 않았다는 거니까요.”

“……가슴이나 엉덩이 쪽에는 좀 살이 쪄도 좋을 텐데.”

“그, 그 마음 이해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하는 메이를 보며 릴리 님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릴리 님 입장에선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너네는 좋겠네. 두말할 것 없는 미인인걸.”


시몬이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알레어는 모델 느낌의 미인, 메이랑 릴리는 로리 계열 미인—— 나만 평범한 일반인이야.”

“……하나도 안 기뻐.”

“로, 로리라니…….”


너무하다고밖에 할 말 없는 표현에 릴리 님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시몬도 귀엽다고요. 눈이 확 뜨이는 미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신비로움과 친근함이 느껴지는 애교가 있어요.”

“……시몬은 친구 계열 미인이야. 새로운 장르지.”

“아, 왠지 모르게 무슨 소린지 알겠어요.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외모죠.”

“무, 무슨 소리야…… 그만하라고, 부끄럽잖아.”


우리가 다 같이 합세해서 시몬을 칭찬하자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무튼 시몬은 콤플렉스를 느낄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다고요.”

“으…… 왠지 잘 구슬리는 말에 넘어가는 느낌이야.”

“……그렇지 않아.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자, 자기한테 없는 요소일수록 동경하게 되고 부럽게 느껴지곤 하죠.”


우리 나이 때는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외모에 신경 쓰게 되는걸요.

그날은 이건 어떠니, 저건 어떠니, 하고 서로의 외모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며 한층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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