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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부활동


바우어 여학원이 바우어 왕립학교와 다른 점들이야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독특한 점 중 하나가 부활동입니다.


“이봐 너, 알레어 프랑소와지? 검술부로 오라고!”

“아냐, 그 체술은 격투부에 딱이라니까.”

“메이 프랑소와 양이죠? 너, 마법 연구부에 오지 않을래? 뭣하면 이름만 올려놔도 되니까!”

“퀴즈 연구부는 어때? 메이 양은 엄청 머리 좋잖아? 완전 어울려!”


지금은 신입생 환영기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교실로 향하는 길을 걷던 중, 저는 주로 직접 몸을 쓰는 부한테, 그리고 메이는 마법이나 두뇌노동이 중심이 되는 부한테 열렬한 권유를 받았습니다.

저는 일단 상급생들의 뜨거운 권유를 전부 보류하고서 간신히 교실에 도착했습니다.


“후우. 겨우 진정됐어요.”

“……지쳤어.”

“수, 수고했어요. 알레어 짱, 메이 짱.”

“두 사람 다 유명인이라 힘들겠네!”


제 자리에 앉아서 한숨 돌리고 있었더니 릴리 님과 시몬이 다가왔습니다.

넷이서 함께 기숙사를 나왔는데 메이와 제가 오는 도중 권유하는 학생들한테 붙잡히는 바람에 두 사람이 먼저 교실에 도착했나봅니다.


“유명한 걸로 치면 릴리 님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릴리 님은 기척을 지우고 있었어. 치사해.”

“어? 그랬어?”

“아, 아하하하……. 네에, 뭐…….”


메이와 제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자 릴리 님이 거북한 듯 시선을 피했습니다.

어휴 정말이지.


“그래서? 셋 다 점찍어둔 부는 있어?”


시몬이 반쯤 흥미 섞인 어조로 물었습니다.


“그러는 시몬은 어떤가요?”

“나는 귀가부로도 괜찮겠지 싶어. 부활동은 자유참가지 딱히 의무인 것도 아니고.”


사실은 그렇습니다.

학원은 학생들의 자주성을 중요시하는 교풍이라 부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는 있어도 의무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학생들 부활동 수준의 검술이나 체술에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 그럼 릴리 님이 들어가는 부활동에 같이 따라갈까, 하는 불순한 생각을 품는 중이었습니다.


“릴리 님은 어떠세요?”

“리, 릴리는 직접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 생각이에요.”

“헤에, 부슨 부인데?”

“……흥미로워.”


저도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서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세 쌍의 시선에, 말을 꺼내기 힘들다는 듯이 머뭇대던 릴리 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 웃지 않을 거죠?”

“안 웃을게요.”

“……안 웃어.”

“맹세할게.”

“……보, 봉사활동부예요.”

“봉사활동부?”


릴리 님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만큼 이름은 납득이 갔지만, 정작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어떤 활동을 하는 부인가요?”

“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곤란해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심부름꾼 같은 느낌이에요. 학원이 공식적으로 나설 정도는 아닌 사소한 문제들이나 고민들을 우리가 해결하는 게 주요 활동이에요.”

“헤에, 조금 재밌어 보이네.”

“……릴리 님다워.”


듣자하니 수도원 봉사활동이랑 비슷한 걸 학원에서 하자는 뜻인가 봅니다.


“그거예요!”

“히끅?! 뭐, 뭔가요, 알레어 짱……?”

“그 봉사활동부에 저도 함께하게 해주세요.”

“네, 네에에……? 아, 알레어 짱이 들어오기엔 아까워요. 거, 검술부에 들어가면 전국대회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노릴 수 있잖아요?”


제가 입부를 희망하자 릴리 님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학생 수준 대회 같은 건 제 관심을 끌지 못해요. 무엇보다 그렇게 따지면 릴리 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리, 릴리는 나이 제한 때문에 출전 못하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더더욱 그래요. 릴리 님과 검을 겨룰 수 없는 대회에 나가봤자 시시한걸요.”

“어, 어어어……. 자, 잠깐 메이 짱, 시몬 짱. 아, 알레어 짱을 설득 좀——.”

“재밌겠네!”

“……응.”

“네에에?!”


릴리 님은 메이와 시몬한테 도움을 요청했지만 시몬도 메이도 봉사활동부에 흥미가 있나 봅니다.


“약자를 돕고 강자를 꺾는다…… 마치 클레어 님 같아!”

“저, 저기—, 시몬 짱. 뭔가 봉사활동부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지 않나요?”

“……대충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메, 메이 짱은 분명 알면서 그러는 거죠?!”


얘기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릴리 님은 허둥거렸지만, 이제와선 떠나간 배죠.


“그렇게 정해졌으면 바로 행동이에요. 부활동 신청은 이미 마치셨나요?”

“네, 네에. 이, 입학식 날 바로 신청서를 제출해뒀어요. 화, 활동 허가는 받았습니다.”

“그럼 얘기가 빠르네!”

“……활동장소는?”

“부, 부실동 교실 한 곳을 써도 된가도 들었는데…… 어, 세 사람 다 정말로 봉사활동부에?”

“네에.”

“……응.”

“맞아!”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릴리 님은 잠시 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었습니다.


“……이 이것도 신께서 내리신 시련일까요.”

“잠깐만요, 릴리 님? 우리가 참가하는 게 마치 안 좋은 일인 것처럼 말씀하지 말아주실래요?”

“……하지만 마음도 이해가 가.”

“뭐, 알레어랑 메이는 트러블을 일으키기 쉬운 타입이지.”

“시, 시몬 짱도 그런데요…….”

“엑.”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더니 수업 시작종이 울렸습니다.


“일단 나머지 얘기는 방과 후에 하죠. 다들 부실로 집합하는 걸로.”

“……응.”

“알겠어!”

“……인생이란 포기가 중요한 법이죠.”


약 한 명이 울상을 짓고 있었던 느낌도 들지만 저는 억지로 얘기를 마무리 지은 다음 수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방과 후가 기대돼요.


◆◇◆◇◆


봉사활동부 부실은 부실동 1층 구석에 있었습니다.

그다지 큰 방은 아니었습니다. 짐을 넣는 로커가 뒤쪽을 차지하고 있고, 넷이서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를 놓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협소했습니다.


“넷이서 부활동을 하기엔 딱 안성맞춤이네요.”“……소수정예.”

“나쁘지 않은 방이네!”

“어, 얼떨결에 입부를 인정해버렸어요…….”


아직도 미적지근한 태도인 릴리 님은 둘째 치고, 메이와 시몬은 의욕만만인가 봅니다.


“부장은 누가 하는 거야?”


시몬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릴리 님을 향해 물었습니다.

릴리 님은 조금 생각하고 나서,


“호, 혼자서 부활동을 할 예정이었다 보니, 릴리가 할 예정이었지만 이 멤버라면 알레어 짱한테 부탁하고 싶어요.”

“……반대.”

“나도 그건 관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뭐예요. 딱히 부장 자리에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말이 너무하지 않나요?”


마치 제가 부장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못마땅했습니다.


“……알레어가 부장이 되면 쓸데없는 일까지 떠안을 게 분명해.”

“메이 말대로야. 알레어 성격이라면 자기가 나서서 트러블을 찾아다니겠지?”

“어? 그런 부활동 아니었어요?”

“조, 조금 달라요.”


당초의 예정은 말이죠, 하고 운을 떼면서 릴리 님이 봉사부의 콘셉트를 설명해주었습니다.


“보, 봉사활동부는 어디까지나 수동적으로 활동할 예정이에요. 고, 곤란해 하는 사람이 상담거리를 가져오면 거기에 대응하는 형식을 취할 거예요.”

“답답하네요. 우리가 직접 찾아 나서면 안 되는 건가요?”


제가 의문을 말하자 릴리 님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


무언가를 낭송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 말은?”

“……정령교회 성경 제 1장 4절.”

“맞다, 그런 구절이 있었지.”

“메, 메이 짱 정답이에요.”


릴리 님은 정령교의 가르침 중 한 구절을 인용한 모양입니다.

정령교회의 전 추기경이었으니 성경 내용이야 전부 머릿속에 암기하고 있겠죠.

릴리 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이, 이 부는 비단 정령교의 가르침 아래에서 활동하려는 생각은 아니에요. 하, 하지만 남을 돕는다는 행위는 일방통행이어선 의도가 왜곡된다고 생각해요.”

“왜곡돼요?”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고, 고난이 닥쳤을 때 일단 중요한 건 스스로가 그 고난과 맞서 싸우려는 의지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응.”

“과연 그렇네.”

“잠깐 기다려주세요, 저는 아직 이해가 잘 안 가요.”


저는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려운 이야기에는 좀 약합니다.


“쉬, 쉽게 말해 이런 거예요. 도움을 받으려는 의지도 없으면서 누군가한테 일방적으로 구원을 받으면 성장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뭐가 문제인 건가요?”

“고, 고난이란 신께서 주신 시련이고, 물론 고통스러운 일도 있지만 인간적으로 성장할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그, 그런 기회를 빼앗는 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과연 그런 걸까요.

제가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자,


“하지만 솔직히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청하지 못하는 애나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모르는 애도 있을 거야.”

혼잣말처럼 툭 말한 사람은 시몬입니다.

그건 어쩌면 그녀 자신의 경험담인 걸까요. 무척 무거운 울림이 담겨있었습니다.


“다, 당연한 염려라고 생각해요.”

“그치?”

“그, 그래도 처음부터 우리가 전부 해결해버리면 그런 아이는 점점 더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가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


어쩌면 이건 정답이 없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거침없이 손을 내밀어야 할 상황인지, 그 아이가 먼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일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죠.

무엇보다도——.


“……애초에 학생들이 하는 동아리에 그렇게까지 무거운 고민을 가져올 애는 없을 거야. 괴롭힘이나 범죄에 대처하는 건 교사가 할 일이지.”


메이의 그 말은 지극히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괜찮지 않겠어요?”

“되게 쉽게 말하잖아.”


제 한 마디가 너무 낙관적으로 들렸는지, 시몬이 살짝 부루퉁한 목소리로 되물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처한 아이들이 있으면 그걸 자기 일처럼 생각해줄 수 있는 시몬이 있잖아요. 그런 소리 없는 목소리를 듣고서 힘없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은 맡기겠어요!”

“뭐어어?! ……흐, 흥, 그 정도는 해줄 수도 있어!”


자신을 의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시몬은 꽤 놀라긴 했지만 토라진 척 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시몬한테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를 의지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딱 이해되는 느낌이 없네요.”


곤란할 땐 도움을 청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인 걸까요.


“후후, 알레어 짱답네요.”


릴리 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지만 그 웃음엔 어딘가 그늘이 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 웃음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뭐, 좋아요. 하지만 그런 거라면 역시 부장은 릴리 님이 좋다고 생각해요.”

“리, 릴리가요?!”

“……찬성.”

“나도 찬성일까.”


당황하는 릴리 님은 아랑곳없이 얘기가 착착 진행됩니다.


“이 부활동의 취지나 의의는 릴리 님이 제일 잘 아실 테고, 메이는 그런 걸 귀찮아하는 타입이니까요.”

“……그 말대로야. 알레어가 나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기뻐.”

“시몬이 하고 싶다면 다시 의논해봐야겠지만…….”

“나도 일반 부원인 쪽인 좋아.”

“그런 거예요.”

“도, 도망칠 구석이 없어…….”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적격인걸요.


“그럼 부장은 릴리 님으로 결정된 걸로 하고, 봉사활동부의 활동 개시예요!”

“……오—.”

“두근두근하네!”

“어, 어라라……?”


그리하여 바우어 여학원 고등부 봉사활동부가 결성됐습니다.

어떤 의뢰가 들어올까, 저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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