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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실력 테스트


입학식 이튿날, 학원에서는 먼저 실력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입학시험 때도 테스트를 받았지만 입학 후에 치르는 이번 테스트에서는 더 세분화된 내용을 묻는 문제들이 나왔습니다.

테스트 과목은 마법, 검술, 교양, 그리고…… 의외로 예법입니다.

보수적 경향을 띤 걸로 유명한 왕립학교에서도 이미 폐지된 과목을 바우어 여학원이 채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 일선에서 활약하는 여성에게 예법은 필수과목이에요.”


그게 학원의 창립자인 클레어 어머니의 말이었습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예법은 바우어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고리타분한 관습이 아닙니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여성들이 몸에 익혀둬야 할 각국의 외교적 격식—— 그걸 가르치기 위한 예법 강의입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신입생 중에 이 강의를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실력 테스트를 해봤자 도토리 키 재기가 되겠지만요.


첫 번째 과목인 마법 시험 직전.

제 옆에 앉은 메이는 역시나 침착한 기색이었습니다.

메이는 전 세계를 따져도 스스 왕국의 마나리아 님을 포함에 단 두 명밖에 확인된 적 없는 4속성보유자—— 쿼드 캐스터입니다.

마법 시험을 어려워 할 이유가 없겠죠.


릴리 님은 어떠냐면, 마찬가지로 살짝 긴장했을 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그녀는 수속성과 풍속성의 2중 속성—— 듀얼 캐스터입니다.

적성도 매우 높으니 메이와 마찬가지로 당황할 일이 없겠죠.


문제는 시몬입니다.


“……시몬, 좀 진정하세요.”

“가만히 진정할 수 있겠어?! 기껏 클레어 님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됐는데 만약 참담한 결과가 나오기라도 했다간……!”

“당장은 결과가 좀 안 좋더라도 이제부터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그걸 위해 학원이 있는 거예요.”

“그거야 그렇지만!”


이런 저런 말을 건네 봤지만 아무래도 시몬은 극도로 긴장했는지 테스트가 시작될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남을 신경 쓰기보다 일단은 저부터 어떻게 해야겠네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어도 역시 마음이 무거워요.”


시몬이 어느 정도 뛰어난 마법 실력을 갖고 있을지, 혹은 서투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조건 저보다는 나을 게 분명합니다.

그도 그럴게 저는 다섯 단계로 나뉜 마법 적성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 무적성이니까요.

쌍둥이 자매인 메이가 굉장한 마법 재능을 타고난 데에 반해, 저는 마법 쪽은 영 젬병입니다.


“저한테는 검술이 있으니까 그다지 상관은 없지만요.”


곧 마법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마법 시험은 측정기로 학생들의 마법 적성을 계측하는 형식입니다.

바우어에선 6살이 되면 마법 적성 측정을 받는 게 의무화되어 있지만, 학원에는 유리아나 시몬처럼 해외에서 오는 유학생들도 많습니다.

측정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는 건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상 그대로군요.”


측정 결과는 여전히 전 속성 무적성이었습니다.

마법 적성은 성장하면서 약간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는데, 기본적으로 없던 속성이 생겨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이 결과는 예상한 바였습니다.

그래서 낙담도 크지 않았습니다.


“와, 굉장해!”

“4속성이래!”

“게다가 전부 중간 적성 이상이라니…….”

“역시 구세의 십걸 중 한 명이네.”


계측장 한 쪽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소란의 원인이야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메이입니다.


이 세상의 마법은 크게 나눠서 지수화풍 4개의 속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 명당 하나의 속성 계통에 적성을 가지고 있고, 적성은 밑에서부터 무적성, 낮음, 중간, 높음, 초월이라는 5단계 평가로 나뉩니다.

메이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혼자 4속성에 적성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주변 애들이 왁자지껄 환호했지만 그에 비해 정작 당사자인 메이는 평소처럼 무표정입니다.

기쁘기야 하겠지만 이제 와서 새삼 소란 피울 정도의 일은 아니라는 느낌일까요.

그야 그렇겠죠.

메이의 진짜 적성은 중간 적성 정도가 아니니까요.


“……재능 있는 애는 좋겠네.”

“어라, 시몬. 계측은 끝난 건가요?”

“응.”

“결과는?”

“……중간 적성이었어.”

“어머, 나쁘지 않잖아요.”


계측 전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보아 어지간히 자신이 없나보다 싶었는데요.


“문제는 적성의 높낮이가 아니야.”

“그럼 뭔가요?”

“……종류야.”

“종류? 딱히 특정 속성이 더 높게 평가받는다거나 그런 건 없잖아요?”

“이걸 보고도?”


그러면서 시몬은 나에게 자신의 계측 결과가 적힌 종이를 건넸습니다.


“마법 속성 분류…… 암속성?”

“맞아.”


저는 시몬이 뭘 고민하고 있었던 건지 이제야 납득이 갔습니다.

방금도 말했듯이 인간이 다루는 마법은 기본적으로 지수화풍 4속성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어둠 속성이라는 마법이 사용됐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역시, 나한텐 마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거네.”

“시몬…….”


그렇습니다.

암속성 마법을 사용한 걸로 알려진 자는 삼대마공이라고 불리는 고위 마족, 그리고 마족들의 정점에 군림하던 마왕입니다.

마족의 피를 이은 사람이라는 것—— 그 사실은 시몬에게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러워요.”


저는 그 사실을 듣고도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가 부럽다는 거야?! 마족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얼마나 고생해왔는지——.”

“시몬은 특별한 마법사인 거네요.”

“?!”


제 꾸밈없는 감상에 시몬은 깜짝 놀란 듯이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 ~~~~~~! ……하아.”

그리고는 잠시 동안 온갖 표정을 보여주더니 마침내 체념한 듯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왜 그래요?”

“알레어를 상대하다보면 뭔가 독기가 빠지는 느낌이 들어. 너는 참 대단한 녀석이야.”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나랑 있으면 분명 안 좋은 일을 겪을 텐데?”

“룸메이트를 무시하는 건 제 미학에 반하는 일이에요.”

“……그래.”


시몬은 다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혈통에 대해서 말인데,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당신은 딱히 사람한테 해를 끼치려는 생각은 없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지.”

“그런 짓은 제가 가만 놔두지 않겠어요. 적어도 제 눈이 닿는 범위 내에서는요.”

“……너, 사람 좋다는 소리 많이 듣지?”

“칭찬으로 받을게요.”


제가 살짝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자 시몬이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아, 알레어 짱, 시몬 짱. 어땠나요?”

“언제나처럼 적성 빵점이었어요.”

“어. 알레어는 무적성이야?”

“맞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야…….”

“저는 검술 쪽이 특기예요.”

“보, 보통은 그렇게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죠…….”


제 유유자적한 태도에 시몬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고, 릴리 님은 그런 시몬을 달래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렐레?


이어서 검술 시험입니다.

시험 내용은 랜덤으로 조를 짜서 대련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거, 검신…….”

“잘 부탁드리겠어요.”


제 첫 상대는 저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검을 나누기 전부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싸우기도 전에 질 생각인가요?”

“! 이게……!”


제 도발에 상대방 아이가 발끈했습니다.

조금은 마음을 다잡았나 봅니다.

네, 그렇게 나오셔야죠.


“준비하고…… 시작!”


그 후로도 교양, 예법 등 테스트가 이어졌고, 하루에 걸친 시험이 끝났습니다.


◆◇◆◇◆


사흘 후.


“어라?”

“엥.”

“말도 안 돼…….”


결과가 게시된 학교 게시판 앞에서 놀람과 당혹이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쿼드캐스터가 1위가 아니야……?”

“검술도 검신이 1위가 아니잖아.”

“두 과목 다 1위는 릴리 님이야. 역시나…….”


그래요.

메이도 저도 각각 마법과 검술 과목에서 상위 10등 안에는 들었지만 1위는 아니었습니다.


“잠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너희들!”


시몬은 그 결과에 납득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너희 자매는 구세의 십걸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성적이 저런 거야?!”

“릴리 님도 구세의 십걸인데요?”

“……오히려 당연한 결과야.”

“그, 그러고 보니……. 아니, 얼버무리지 말아줄래?! 릴리는 그렇다 쳐도 너희들이라면 최소 3등 이내에는 들어갈 수 있잖아?!”


아무래도 시몬은 메이와 제가 일부러 대충한 거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시몬, 저는 최선을 다해 테스트에 임했는걸요?”

“……메이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쿼드캐스터랑 검신이 어떻게 10위권 안팎이 될 수 있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시몬은 쉽게 발끈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그러는 시몬은 어땠어요?”

“윽…… 지금은 내 성적 같은 건 아무래도 좋잖아!”

“시, 시몬 짱은 마법에서 19위, 검술은 15위, 교양은 285위, 예법은 38위네요.”

“릴리! 말 안 해도 된다고!”

“하우우?! 죄, 죄송합니다…….”


어라, 시몬도 참 꽤 열심히 했군요.


“교양만 유독 눈에 띄게 성적이 낮네요? 뭐, 저는 최하위였지만요.”

“……답안지를 한 칸씩 밀려 썼단 말이야……. 잠깐, 최하위?”

“……그거 안 됐네. 알레어도 시몬도.”

“어휴— 진짜! 내 성적은 됐어! 그것보다 너•희•들!”


시몬은 입만 다물고 있으면 꽤나 요염한 미소녀라고 생각하는데 입만 열면 어쩐지 친근감이 생기는 느낌이네요.


“시, 시몬 짱. 두 사람은 일부러 대충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확실한 이유가 있어요.”

“이유?”

“그렇죠? 알레어 짱, 메이 짱.”

“네에, 뭐.”

“……응.”


그래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학원에 입학하는 게 정해졌던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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