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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계기


릴리 님을 좋아하느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 뻔합니다.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뭐?”

“어, 어어어?”

“어라?”


제 대답에 메이도, 릴리 님도, 시몬도 깜짝 놀란 듯한, 혹은 맥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머? 조금 서운한 표정 짓지 않으셨어요? 저는 알고 있어요. 이런 걸 부끄럼기라고 부르는 거 맞죠?”

“아, 아니에요……!”

“……또 시작이야.”

“잠깐, 그게 무슨 뜻인데! 똑바로 설명해 줘!”


메이는 금방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지만 시몬은 납득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 타이밍에 마침 우리가 요리를 받을 차례가 되어서 일단은 다 함께 주문한 요리를 손에 들었습니다.

한창 붐비던 학생 식당이지만 대화에 열중하는 동안에 빈자리가 난 덕분에 넷이 함께 앉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비프스튜, 릴리 님과 메이는 카레, 시몬은 돈까스 정식을 주문했습니다.

메이의 식사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이번엔 넘어가고 다음 기회를 기약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잘 먹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마친 뒤, 저는 방금 전 시몬이 한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저는 릴리 님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청 좋아해요…… 아니, 사랑하고 있어요.”

“그, 그래…….”

“……레이 엄마의 말을 베꼈네.”


메이의 태클은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휘파람을 불면서 슬쩍 모른 척 했습니다.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말하는 제 말에 시몬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흠, 과연 이건……?

예상을 뛰어넘는 브라운소스의 훌륭한 완성도에 입맛을 다시며 저는 시몬의 생각을 눈치챘습니다.


“그렇게 여자끼리 당당하게, 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시몬?”

“그렇게 까진 생각 안 했어. 애초에 바우어에서도 몇 년 전부터는 동성결혼이 합법적으로 인정됐잖아?”

“……엄마들 덕분이지.”

“유, 유 님과 미샤 씨의 힘도 컸죠.”


그렇습니다.

바우어 왕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동성혼이 법제화 된 겁니다.

유 님은 전 왕위 계승권 3위였던 분이자, 지금은 정령교회에서 추기경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미샤 씨는 어머님들의 소꿉친구이자, 이제는 유 님의 반려가 된 아주 유능한 수녀입니다.


각설하고.


어쨌든 아직 그다지 다수파라고 볼 수는 없지만 바우어에서 동성혼은 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네에, 맞아요. 하지만 아직은 이상하다는 시선을 받을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죠. 시몬은 어떨까 싶었어요.”

“……나는——!”


시몬은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가 문득 입을 다물고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더니 반찬으로 나온 짠지를 아작아작 씹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편견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려나. 편견이 없다고 말하면서 태연히 나를 차별하는 사람들을 잔뜩 봐왔으니까.”

“아주 올바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시몬. 누구나 많든 적든 편견을 갖고 있는걸요. 그걸 자각하고 있다는 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재능인걸요?”

“그렇게 칭찬받을만한 일인 걸까…… 아니 그게 아니라!”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갈게, 라면서 시몬이 말을 이었습니다.


“어쨌든 알레어는 릴리를 좋아하는 거지?”

“네, 좋아한다는 말만으론 부족할 정도로요.”

“……흐—응. 어떤 점이?”

“전부예요.”

“크게 나오네…….”

“……진지하게 상대하지 않는 편이 나아, 시몬. 피곤할 테니까 알레어를 상대하는 건 메이한테 맡겨줬음 해.”

“아, 아하하하…….”


뭔가 어처구니없어하는 기색이지만 이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제 진심입니다.


그 후, 우리는 평범하게 식사를 마치고, 양치나 목욕까지 끝내니 이제 잘 준비만 남았습니다.

불이 꺼지니 방 안에는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이대로 조용히 잠들까 했는데, 그 순간 방 안의 침묵을 깬 건 시몬이었습니다.


“알레어가 릴리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뭔가 계기 같은 게 있었어?”

“어머, 사랑 얘기를 이어서 하는 건가요? 좋아요, 릴리 님에 대해서라면 저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는걸요.”

“……메이는 잘래. 꿈속에서 알레어를 껴안으면서.”

“아, 아하하하…….”


메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말로 바로 잘 생각은 없는지, 우리 쪽 분위기를 가만히 살피고 있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메이의 기척을 느끼면서 저는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네요, 릴리 님한테 호되게 박살났던 게 계기라면 계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어, 알레어는 보기와 다르게 극도의 마조히스트인 거야……?”

“그게 아니에요. 얘기가 좀 길어질 텐데 괜찮나요?”

“응, 상관없어.”


그렇다면야, 하고 저는 다들 얘기 도중에 잠들어도 괜찮다고 말한 다음 입을 열었습니다.


“그건 제가 막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있었던 일이에요.”


◆◇◆◇◆


“다녀왔어요.”

“……어서 와.”

“잘 다녀왔니.”

“어, 어서 오세요.”


집에 돌아왔더니, 집에는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클레어 어머니와 레이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릴리 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릴리 님. 오늘도 건강하신가요?”

“아, 저기…… 그게, 좀 긴장하고 있으려나요.”

“긴장? 무슨 일 때문인가요?”

“알레어, 잠깐 여기 앉아보세요.”

“네?”

“됐으니까.”


클레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살짝 험악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말을 꺼낸 레이 어머니도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입니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쩐 일인가요, 어머님들?”

“알레어, 오늘 학교에서 학생한테 상담이 들어왔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의 골목대장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면서?”


어머니들의 두통이라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꺼냈습니다.


“골목대장이라니 듣기에 안 좋네요.”

“얘기를 듣자하니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들던데요?”

“……뭐, 클레어도 학창 시절에는——.”

“레이, 얘기가 복잡해지니까 잠깐 조용히 있어줘요.”

“네에—.”


레이 어머니를 한방에 침묵시킬 있다니 클레어 어머니는 여전하시구나, 하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면서 저는 대충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짐작이 갔습니다.


“확실히 저는 영향력 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살짝 해결사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걸 말하는 거예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주 크게 있고말고요.”


클레어 어머니는 눈가를 주무른 뒤 떫은 표정을 지은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레어. 당신은 자신에겐 힘이 있다는 생각에 조금 행동이 지나치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그럼 저번 주에 남학생들 여럿에게 큰 부상을 입혔던 일도 지나친 행동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거군요?”

“물론이에요.”


이건 어머님들이 오해하는 거라고 느꼈기 때문에 저는 변명을 시작했습니다.


“저번 주에 있었던 그 일은 어떤 여학생이 일부 남학생들한테 괴롭힘을 당했던 게 원인이에요. 결코 약한 자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었는걸요?”

“이번 일에 원인이 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당신은 남학생들을 치료소행으로 만들었죠?”


치료소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인 정령교가 운영하는 의료시설을 말합니다.

시민들이 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으로 꼽히는 곳이 이곳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행위를 두고 볼 수는 없어요.”

“그 마음가짐은 좋아요. 하지만 과잉대응을 한다면 괴롭힘을 저질렀던 아이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해악이에요.”


저는 울컥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고 실천한 일을 이렇게 폄하하듯이 말하는 건, 아무리 상대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머님은 저한테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이상에서 현실로 도피하지 말라고요. 이상을 내건 자는 언제나 그걸 실천하는 자가 되라고.”

“당신은 그걸 실행했을 뿐이라는 뜻?”

“맞아요.”


애초에 괴롭힘 행위를 방치하고 있던 학교에도 문제가 있을 겁니다.

교사들이 뭔가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제가 나설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확실히 저는 그 아이들한테 다소 부상을 입혔어요. 하지만 그것도 치료소에서 치료를 받으면 회복할 수 있는 범주였어요.”

“부상은 나으면 아예 없었던 일이 되기라도 하나요? 그들이 입은 부상이 어느 정도인지도 보고를 받았어요. 심한 골절에 깊은 열상, 세세한 상처는 다 셀 수가 없을 정도……. 그들이 느낀 공포까지 마법으로 치료할 수는 없는데요?”

“자업자득이에요. 그렇게 따지면 괴롭힘을 당했던 여학생이 받은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러고도 잠시 동안 저는 클레어 어머니와 언쟁을 나눴습니다만, 서로가 자신의 말이 옳다고 믿으며 한 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하아……. 클레어, 당신은 조금 지나치게 우쭐해져 있군요.”

“그냥 들어 넘길 수 없어요. 도대체 제 어디가 우쭐해져 있다는 거예요.”

“당신, 스스로 무엇 하나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사실인걸요.”


저는 구세의 십걸 중 한 명, 클레어 프랑소와의 딸로서 한 점의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늘 마음에 새기고 있기 때문에 설령 어머니라고 해도 그걸 부정할 수는 없어요.


“……이렇게 된 일이에요. 부탁할 수 있을까요, 릴리 추기경.”

“조, 조금 더 얘기를 나눠보는 편이…….”

“아니요, 말해봤자 듣지를 않는 어리석은 딸은 한번쯤 아픈 꼴을 당해봐야 해요.”

“그, 그래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대체 무슨 얘기인가요?”


갑자기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클레어 어머니를 향해 물었습니다.


“알레어. 당신, 릴리 추기경과 겨뤄보도록 하세요.”

“네?”

“저, 정말로 하는 건가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릴리 추기경과…… 겨루라고요?


“어머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쉬운 일이에요. 릴리 추기경이 당신의 자만심을 훈계해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검을 겨루는 건가요?”

“네에.”

“리, 릴리는 아직 승낙한 게……!”


허둥지둥하는 릴리 님은 제쳐두고서 얘기가 진행됐습니다.


“클레어 어머니, 자만하시는 건 어머님들 아니신가요?”

“……뭐라고요?”


찌릿찌릿한 긴장된 분위기가 감도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저는 지금 누가 봐도 클레어 어머니에게 싸움을 걸고 있었으니까요.


“어머님들이 구세의 십걸이라고 불렸던 건 벌써 몇 년도 더 전의 일이에요. 일선에서 물러난지 오래죠?”

“우리가 당신에게 밀리기라도?”

“지식이나 교양, 기타 등등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저 같은 건 아직 어머님들께 비할 바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투력은 별개인데요?”


스승이었던 나 제국 전 황제 도로테아로부터 검사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검신의 자리를 이어받은 건 겉치레나 장식이 아니니까요.

매일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저와 이미 싸움과는 한참 먼 생활을 보내고 있는 어머님들을 비교하자면 제 쪽이 더 할 말이 많을 겁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레이와 저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하지만 릴리 추기경은 달라요.”


클레어 어머니가 릴리 님을 보았습니다.

믿음직스럽다는 눈길이었지만 정작 릴리 님은 자신 없다는 듯이 갈팡질팡 시선이 방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릴리 추기경은 지금도 교회의 실전 부대를 지휘하고 있고, 본인도 마물과의 싸움을 계속해온 현역이에요. 그렇게 쉽게 쓰러트릴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자, 잠깐, 클레어 님?! 왜 멋대로 바람을 불어넣으시는 건가요?!”

“힘내— 릴리.”

“레, 레이 씨도 좀 말려주세요!”

“아니— 그치만 나도 알레어는 이쯤에서 한번쯤 아픈 꼴을 당해보는 편이 나중을 위해 좋겠다 싶어서.”

“그, 그렇게 멋대로…….”


저는 몹시도 불만이었습니다.

어머님들이 제가 지는 걸 전제로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아요. 그렇다면 받아들이죠.”

“아, 알레어 짱까지?!”

“그 대신 릴리 님이 다소 부상을 입게 되더라도 나중에 불평은 듣지 않겠어요.”

“네에, 좋아요.”

“조, 좋지 않은데요?!”

“힘내— 릴리.”

“그, 그러니까 좀 말려주세요, 레이 씨!”


이리하여 저는 릴리 님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승부는 마법도 검술도 허용인 단판 승부. 메이가 위력 감소 결계를 쳐줄 테니까 본 실력을 다 해도 문제없어요.”

“……왜 메이가 이런 일을 도와야 하는 거야.”

“미, 미안해요, 메이 짱.”


릴리 님과 저는 집 뒤에 있는 넓은 초원에서 서로 마주보고 섰습니다.

이번 싸움을 위해 불려온 메이는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리고 있었습니다.


“각오는 되셨겠죠, 릴리 님.”

“아으으으으……. 사, 살살 부탁드릴게요…….”


릴리 님은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내키지 않는 기색입니다.

그런 태도로 이 검신을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곤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지만.


“그럼 양자 준비!”


클레어 어머니의 신호에 저는 목검을 잡고 자세를 잡았습니다.

릴리 님도 애용하는 쌍 단검을 본뜬 두 자리 목봉을 잡고 있습니다.


“——시작!”


검술에 쓸데없는 잔재주는 필요 없다.

스승인 도로테아 님의 가르침은 간결했습니다.

가장 빠른 속도로 파고들어 최단거리를 최속으로 벤다—— 이게 스승님의 가르침의 극의입니다.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연마하기는 더욱 어렵지만, 극에 달하면 막아낼 수 없다.

저는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언제나 심신을 단련해 왔습니다.


(빠르게 끝내도록 하죠.)


릴리 님도 이런 소동에 말려들어 난처해하고 계실 터.

조금 아프기야 하겠지만 빠르게 승부를 내는 게 릴리 님을 위한 일입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처음 몇 합을 겨뤘을 때 까지였습니다.


“큭……!”

“무슨 일인가요, 알레어. 칼끝이 흔들리고 있는데요?”

“어머니는 입 다물고 계세요!”


클레어 어머니가 지적할 필요도 없이 누구보다도 제가 그 사실을 가장 크게 통감하고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도 제 생각대로 되는 게 없었습니다.

가장 빠른 속도로 베어야 할 검이 최고 속도에 도달하기 전에 막히고 있었습니다.

신속이라고 불렸던 보법도 계속해서 간격이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최단 거리는 바랄 수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제가 맞닥트린 건 그 모든 요소를 갖춘 검격이 두 줄기 빛살이 되어 덮쳐드는 악몽과 같은 사태였습니다.


나중에 알려줘서 깨닫게 된 거지만 이때 릴리 님은 시간을 조종하는 마법을 검술과 조합한 초고난이도의 기술을 펼치고 있었고, 그걸 처음 본 저는 완벽하게 농락당했던 거였습니다.


“릴리 님, 마무리를.”

“……알레어 짱, 미안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 의식은 깜깜한 어둠속으로 떨어졌습니다.


◆◇◆◇◆


“헤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요. 그런 완패를 맛본 건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 그때는 제가 어른스럽지 못한 짓을…….”

“……하지만 그 일로 알레어는 릴리 님에게 푹 빠졌어.”

“그런 거야?”

“네에.”


실제로 클레어 어머니의 지적은 틀린 말이 없었던 겁니다.

저는 자신이 완벽한 인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마법이나 공부야 메이한테 밀리겠지만 그 외의 점들에선 자신과 비견될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철저하게 알려준 사람이 다름 아닌 릴리 님이었습니다.


“릴리 님은 검술뿐만 아니라 마법도 초일류였어요. 전투만 그런 게 아니에요. 요리도 가사일도 공부도 다 잘해요. 서투른 건 바느질 정도 아닌가요?”

“치, 칭찬이 과해요!”

“그러면서 이런 겸손함. 게다가 이렇게 학원에서 더 배우려고까지 하니 이젠 두 손 들 수밖에 없어요.”


신기하게도 저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제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사실이 몹시도 기쁘게 느껴졌고, 그 대상인 릴리 님에게 저는 점점 더 마음이 끌리게 된 겁니다.


“……역시 알레어는 극도의 마조히스트 아니야?”

“듣기에 거북하네요. 하지만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있겠어요. 레이 어머니의 딸이기도 하니까요.”

“……문제 발언.”

“레, 레이 씨가 들으면 울 거예요!”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어머니를 울리는 불효녀에겐 따끔한 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릴리 님?!”“버, 벌이라는 건 그렇게 기뻐하면서 요구하는 게 아니잖아요?!”


뭐, 레이 어머니에 대해선 일단 제쳐두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저는 릴리 님에게 사랑에 빠진 거예요. 릴리 님은 아직 레이 어머니를 잊지 못한 모양이지만요.”

“그 얘기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대체 레이 님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지 나로선 잘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레이 씨는 멋진 사람이에요!”

“……구제할 길이 없어. 하지만 알레어는 언젠가 메이가 구해낼게.”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밤이 깊어갔습니다.

일단 오늘은 이쯤 하기로 하고 우리도 이만 눈을 감기로—— 했을 때 문득 생각난 게 있었습니다.


“저기, 릴리 님.”

“……왜, 왜 그러나요, 알레어 짱.”


2층 침대 위를 향해 말을 건네자 머뭇머뭇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때 저를 이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리, 릴리는 살짝 후회하고 있지만요. 그, 그 일이 없었다면 알레어 짱의 마음이 이렇게나 삐뚤어질 일도 없었을 테니까.”

“삐뚤어지지 않았어요. 저는 정말로 릴리 님을 좋아하는데요?”

“…….”


릴리 님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정말 죄 많은 분이에요.


“슬슬 시간이 늦었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자, 잘 자요.”


내일부터는 드디어 본격적인 학원생활입니다.

저는 설레는 가슴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잠을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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