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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또 한 명의 클래스메이트


“릴리 님…… 와주셨네요.”

“무, 무슨 일인가요, 알레어 짱. 이런 곳으로 부르다니.”


방과 후 중앙 정원.

저는 릴리 님을 어떤 곳으로 불러냈습니다.

이 곳은 학생들에게 특별한 장소로, 통칭 『전설의 나무』라고 불리는 벚꽃나무 아래였습니다.


제 부탁에 따라 나와 준 릴리 님은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운 자태로 살짝 불안한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릴리 님도 이 나무에 대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이 나무가 전설의 나무라고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건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진짜처럼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입니다.

이 나무 아래에서 고백해서 맺어진 커플은 영원한 행복이 보장된다는 전설입니다.

그런 장소로 불러낸 데다, 상대는 오래 전부터 릴리 님한테 구애해왔던 저였으니 불러낸 의도는 불 보듯 뻔한 일.

릴리 님의 표정에서 긴장한 기색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릴리 님!”

“네, 넷!”


저는 릴리 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가녀린 두 손을 덥석 잡고 말했습니다.

릴리 님의 깜짝 놀란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말을 이었습니다.


“줄곧 연모하고 있었어요. 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주세요……!”

“아, 알레어 짱……!”


제 고백에 릴리 님은 처음엔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뇌에 스며들자 뺨을 붉혔습니다.

고개를 푹 수그리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바로 껴안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습니다.


영원과도 같은 몇 분.

이윽고 릴리 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리, 릴리로 괜찮다면 알레어 짱의 곁에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릴리 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길가에 핀 민들레처럼 살포시 웃었습니다.

그 대답에 저는 기쁨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쭉 마음에 품고 있던 여성이 내 마음에 응해주었다—— 그 사실이 제 가슴을 따뜻한 온기로 채워주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고백을 받아주시는 건가요……?”

“네, 네……!”

“아아…… 무슨 일이람. 마치 꿈만 같아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저는 릴리 님의 몸을 껴안았습니다.

그런데——.


“릴리 님……?”


제 품 안에 쏙 안겨 있어야 할 아담한 몸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릴리 님의 모습이 사라지고만 겁니다.


“어디……?! 어디 계신 건가요……?!”


저는 다급하게 릴리 님을 불렀습니다.

마침내 염원을 이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이런 일이……!


“……하아, 알레어도 참.”

“……메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메이였습니다.


“메이, 릴리 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있나요? 저, 릴리 님이랑——.”

“……응, 알고 있어.”

“……네?”


메이는 무뚝뚝한 차가운 표정으로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슬슬 알레어는 깨달아야 해.”

“메이, 당신은 무슨 소릴 하는 건가요……?”

“……잘 떠올려 봐. 지금이 언젠지.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의 관계를.”


그러더니 메이는 희미하게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저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 꿈이야.”

“……?!”


그 말에 세상이 흐느적거리며 일그러졌습니다.


“……어 짱.”

“음…….”


어떤 목소리가 들립니다.

방울이 구르는 듯한, 너무나 마음 편한 목소리입니다.


“아, 알레어 짱, 그만 일어나세요.”

“……그걸론 안 돼, 릴리 님. 제대로 깨우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귀에 익은 또 하나의 목소리,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온—— 그 순간.


“꺄악?!”


등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는 바람에 확 정신이 들었습니다.

졸음이 달아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창문에는 노을이 비쳐들고 있었고, 반 친구들은 가방을 들고 차례차례 교실을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바우어 여학원은 비교적 새로 설립된 학교입니다.

클레어 어머니와 레이 어머니를 중심으로 설립된 지 아직 1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바우어에 있는 평범한 학교들과 비교하면 설비도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고, 한 눈에 보기에도 튼튼하고 새것 티가 납니다.

그런 교실을 배경으로 어처구니없어하는 시선을 보내는 메이와 찌푸린 표정을 짓고 있는 릴리 님이 보였습니다.


“등이 차갑잖아요?! 잠깐, 메이!”

“……잘 잤어? 알레어.”

“아, 아하하하, 과격한 치료법이네요…….”


교복 등 쪽을 탈탈 털자 조약돌만한 얼음덩이 세 개가 떨어졌습니다.

메아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얼음탄인 모양입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그건 내가 할 말이야. 홈룸 시간에 푹 잠들어버리다니.”

“하, 하긴, 그다지 칭찬 받을 만한 행동은 아니었죠…….”

“으…….”


하나부터 열까지 옳은 말이라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하루를 마치는 홈룸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지루한 나머지 깜빡 잠이 든 모양입니다.

뭔가 모든 게 제가 바라는 상황대로 흘러가는 꿈을 꾼 것도 같은데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굉장히 행복한 기분이 젖어있었던 것만큼은 가슴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꺼냈다간 메이는커녕 릴리 님까지 어처구니없어하시겠죠.

저는 마음을 다잡고서 입을 열었습니다.


“그치만 홈룸은 너무 지루한걸요. 내용도 나중에 메이한테 필요한 부분만 들으면 그만이고요.”

“……메이가 할 일을 늘리지 말아줘. 만약 어리광을 부릴 거면 좀 더 연인다운 느낌으로 부탁할게.”

“마, 맞아요, 알레어 짱. 무, 무엇보다 입학 첫날 홈룸이니 중요한 연락사항들이 잔뜩 있을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 걸까요?”


처음에야 저도 진지하게 들으려 마음먹고 있었지만 점점 듣다보니 밀려오는 졸음에 당해낼 수 없었는걸요.


“뭐, 됐어요. 그래서요? 기숙사 룸메이트는 발표됐나요?”

“……그것조차 안 들었던 거야?”

“아, 아하하…….”


메이는 무표정인 채로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을 보냈고, 릴리 님은 황당해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역시 이건 좀 찔리네요.


일명 『학원』이라고 불리는 이 학교에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로 전 학생 기숙사제라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은 4인 1실로 배정을 받게 되고, 그 안에서 집단생활을 하게 됩니다.

룸메이트가 어떤 사람인가는 학생들에게 꽤나 커다란 관심사입니다.


“바, 발표가 됐어요. 우, 우리 셋은 같은 방인 모양이에요.”

“?! 정말로요?!”

“……알레어, 너무 좋아하잖아.”

“그치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어요! 앞으로 3년을 함께 할 룸메이트 중 한 명이 릴리 님이라니!”

“부, 부끄럽네요…….”

“……메이도 있는데 말이지…….”


아까부터 쓴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릴리 님과 조금 불만스러워 보이는 메이를 보면서 저는 치밀어 오르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복 차림밖에 본 적 없었던 메이의 교복 차림이 신선하게 비치는 건 물론이고, 제 눈에는 릴리 님의 모습도 무척이나 눈부셨습니다.

릴리 님의 모습은 정령교회 수녀복을 입은 모습이 디폴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와 같은 차림, 게다가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교복을 입고 계신다니.


거기에 더해 기숙사 방까지 같은 방이 되다니, 이정도면 이미——.


“릴리 님, 우리 결혼해요.”

“가, 갑자기 무슨 말인가요?!”

“……아마 평소의 병이 도졌겠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좋아.”


하나하나 반응을 해주는 릴리 님에 비해, 메이는 쌀쌀맞습니다.


“메이가 함께하는 것도 당연히 기뻐요. 하지만 이렇게 같은 반이 됐을 뿐만 아니라 기숙사까지 한 방이 되다니, 역시 릴리 님과 저는 하나로 맺어질 운명인 거예요.”

“그, 그 운명은 아마 틀린 것 같은데요…….”

“……메이를 덤인 것처럼 취급하지 말아줘. 함께할 거라면 평생 함께하겠어.”


꿈속 릴리 림과 다르게 현실의 릴리 님은 아직까지 마음의 거리가 있나 봅니다.

그렇다곤 해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지금뿐.

이제부터 같은 방에서 함께 지내게 된 겁니다.

저는 이번 3년 사이에 어떻게 해서든 릴리 님의 마음을 돌려놓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셋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더니 누군가가 교실을 살펴보러 왔습니다.


“어라? 아직도 남아 있었어? 서둘러 기숙사로 이동해서 짐을 풀도록 해.”

“레, 레이 씨!”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릴리 님의 얼굴이 확 밝아졌습니다.

……어휴 정말이지.


“미안, 릴리. 보나마나 또 알레어가 폐를 끼치고 있었지?”

“그,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보다 오늘 시간 있으신가요?”

“아— 미안. 아무래도 입학 당일은 좀 바빠서. 좀 정리가 되면 차분히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길 거야.”

“그, 그런가요…….”


릴리 님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습니다.

그야 그렇게 되겠죠.


“릴리 님, 그만 가요.”

“네? 아, 잠깐, 알레어 짱!”

“……레이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응, 잘 가.”


저는 릴리 님의 손을 잡아끌면서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미련이 남은 것처럼 보이는 릴리 님의 모습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교사와 제자로서 선을 긋고서 인사를 나누는 메이와 레이 어머니의 대화를 등 뒤로 들으면서 저는 개운치 못한 기분으로 기숙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


“시, 시몬 오르소야! 편한 대로 불러!”


기숙사로 향하는 동안 벌어진 사소한 마물 소동을 처리한 뒤, 우리는 기숙사로 들어갔습니다.

학교 내에 마물이 나타나다니, 요즘은 참 뒤숭숭하네요.

옛 친구인 유리아와 상당히 인상적인 사건을 통해 재회하게 됐지만 일단 다친 곳은 없어 보였습니다.

유리아가 걱정되긴 하지만 카운슬러 선생님도 잘 보살펴주실 테고,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당초 예정대로 기숙사에 왔습니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에 도착했더니 방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랏빛 트윈 테일과, 머리카락과 똑같은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작은 체구의 여학생이었습니다.

학원 기숙사는 4인실이니 릴리 님, 메이, 저에 이어 한 방을 쓰게 될 또 한 명의 룸메이트가 바로 그녀인 거겠죠.


시몬 양은 팔짱을 끼고서 턱을 위로 치켜든 자세로 우리를 보며 간결한 자기소개를 건넸습니다.

저는 어쩐지 새끼고양이가 위협하는 것 같아서 귀엽네, 하고 약간 실례되는 감상을 품었습니다.


“정중한 자기소개 고마워요. 저는 알레어 프랑——.”

“물론 알고 있어!”

“그, 그런가요.”

“그쪽 두 사람도 알아! 메이 프랑소와랑 릴리 릴리움이지!”

“……잘 부탁해.”

“네, 네. 자, 잘 부탁드릴게요.”


시몬 양의 태도에는 저뿐만 아니라 릴리 님도 당혹스러운 모양입니다.

메이는 평소와 똑같아 보였지만요.


“가장 먼저 도착했으니 내가 쓸 책상이랑 침대는 멋대로 골랐어! 상관없지?!”

“네, 네에……. 상관없어요. 저는 릴리 님이랑 같은 침대로 할게요.”

“그러든가!”

“……그럼 시몬은 메이랑 같은 침대네.”

“불만 없어!”

“저, 저기—. 리, 릴리한테 선택권은……?”

“““없어(요).”””

“괘, 괜찮긴 하지만요…….”


아무튼 이러니저러니 해서 침대와 책상 분배도 마쳤습니다.

기숙사는 방 한 개 치고는 제법 넓은 공간이지만 2층 침대 두 개와 책상 네 개가 놓여 있으니 꽤 좁습니다.

수납공간도 한정적이니 개인 물건은 최대한 줄이라고 입학 안내에 주의사항이 달려 있었습니다.

학원 기숙사가 면적으로는 왕립학교 2인실보다 넓겠지만 개개인이 쓸 수 있는 공간은 훨씬 좁아 보입니다.


“시몬 양.”

“시몬이라고 불러도 돼!”

“그럼 시몬. 성이 오르소라는 건 당신은 레네 씨와 램버트 씨의……?”

“맞아, 딸이야! 양녀지만!”


레네 씨와 램버트 씨는 어머님들이 옛날부터 신세를 졌던 분들로, 플라텔이라는 커다란 상회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플라텔은 학원의 대규모 출자자 중 하나이기도 해서, 사적인 측면뿐 아니라 공적으로도 어머님들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랬군요. 그렇다면 우리를 알고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네요.”

“맞아!”

“머나먼 아파라치아에서 바우어까지 잘 왔어요. 환영할게요.”

“아파라치아와 바우어도 전이문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멀게 느껴지진 않았어!”

“아아……. 나 제국이 세계 각지에 시험운용을 개시했다던 그거 말이군요.”


저는 아직 이용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장치라고 들었습니다.

제국의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을 통해 발명했다고 하는데, 유물의 해석이나 설치, 운용에는 시몬의 양아버지인 램버트 씨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고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


저는 시몬에게 아까부터 쭉 신경 쓰였던 점을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말할 때 피곤하지 않나요?”

“뭐야, 불만 있어?!”

“불만은 없지만 조금만 더 편하게 말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그냥 이걸로 됐어!”“그, 그래요…….”


뭐라고 해야 하나, 시몬은 저에게 적의는 아니지만 어떠한 커다란 감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 시몬한테 뭔가 했던 걸까요?”

“한 적 없어!”

“그럼 조금 더 친근하게 교류를 나누고 싶은데요.”

“그건 어렵겠네!”

“그, 그런가요……?”


어째서 시몬이 이렇게 구는 걸까요.


“시, 시몬 양.”

“양은 필요 없어!”

“아, 저기, 그랬었죠. 시몬 짱은 혹시 엄청 긴장하고 있는 건가요?”

“?!”


릴리 님의 한 마디에 시몬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어, 어떻게……!”

“저, 정답이었나요. 그, 그냥 어쩐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는걸요.”

“구, 굴욕적이야……!”

“……왜 긴장하는 거야? 처음 만나는 거라서?”


메이의 물음에 시몬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 그야…… 너희 둘, 클레어 님의 딸이지?”


그런 말을 꺼냈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클레어 프랑소와와 레이 테일러의 딸이에요.”

“……구세의 십걸의 딸이라서 긴장하는 거야?”

“아니야!”


엄마들이 워낙 유명한 분들이라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종종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시몬은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나는 클레어 님을 동경하거든!”

“클레어 엄마를?”

“맞아!”


아까까진 엄청 굳어있던 시몬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습니다.


“귀족으로 태어났으면서도 타고난 신분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의 바우어 시민제도의 초석을 다진 건 유명한 이야기지!”

“그, 그렇죠. 크, 클레어 님의 유명한 일화예요.”

“게다가 마족과의 싸움에도 뛰어들어 마지막엔 마왕마저 쓰러트렸고!”

“그것도 유명한 얘기군요.”


시몬이 말한 것들은 클레어 어머니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전설』들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런 거라면 레이 엄마도 존경의 대상 아니야?”


메이의 지적은 타당했습니다.

클레어 엄마가 이룬 공적은 거의 다 레이 엄마한테도 해당되는 것들입니다.

물론 레이 엄마는 원래부터 평민이었지만요.


“레이 님은…… 좀…….”


시몬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말이라면 억지로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금방 들킬 일이니까.”


그러면서 시몬은 등을 돌려 교복을 들춰 등을 보여줬습니다.


“시몬…… 그건…….”

“응, 날개가 있는 거 보이지?”


시몬의 등에는 박쥐를 닮은 검은 날개가 작게 돋아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녀는——.


“나는 인간과 마족의 혼혈이야.”


옷매무새를 정리하고서 다시 이쪽으로 몸을 돌린 시몬은 침울한 표정으로 털어놨습니다.


“마족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 때문에 꽤 험한 꼴을 많이 봤거든. 마족이라는 존재를 탄생시킨 레이 님은 솔직히 존경하기 힘들어.”

“레, 레이 씨가 탄생시킨 게——!”

“알고 있어!”


시몬은 릴리 님의 말을 끊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 마족을 탄생시킨 건 마왕이고, 레이 님 본인이 아니라고…… 알고 있어. 그래도——.”


시몬의 표정에 갈등이 드러났습니다.


“마왕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 마왕을 미워해봤자 이미 존재하지 않으니 감정을 풀 곳도 없어. 그래서…… 레이 님인 거야.”

“시, 시몬 짱…….”


릴리 님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입니다.

그 얼굴에는 동정하는 기색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짝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애먼 화풀이 아닌가요?”

“알레어 짱!”


제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릴리 님이 꾸짖듯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그렇잖아요?


“……알레어는 섬세함이 너무 부족해.”

“그, 그렇다고요!”

“됐어. ……사실은 알레어의 말이 맞으니까.”


메이랑 릴리 님이 편들어주듯이 말했지만 아무래도 시몬 스스로도 자신이 삐뚤어진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건 아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레이 님한테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어쩔 수가 없어.”

“그런 거였군요.”


시몬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옛날부터 이럴 때마다, 제 자신의 이질적인 부분을 느끼게 됩니다.


약함에 대한 공감 능력.

저한테는 그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릴리 님이나 메이가 시몬의 얘기를 듣고 자연스레 동정심을 품었지만 저로선 그 감정이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시몬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이 어머니를 원망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걸요.

맞서 싸워야할 상대는 그녀를 괴롭혀 온 다른 사람들이겠죠.

——제 생각은 어쩔 수 없이 이런 흐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이걸 스스로의 커다란 결점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어머님들도 몇 번이나 지적했던 점입니다.


——저는 인간의 약함을 이해하지 못해요.


“뭐, 나에 대한 건 됐어. 칙칙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게 됐네!”

“그, 그렇지는……!”

“……얘기해줘서 기뻤어.”

“고마워. 너희들 좋은 애들이구나!”


여기서 제가 껴들어봤자 또 상황이 꼬일 것 같아서 하려던 말을 삼켰습니다.


일단 서로 인사도 나눴고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이 됐기 때문에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입학 첫날이라는 점도 있어서 식당은 몹시 붐비는 상태였습니다.

줄을 선 채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누며 교류를 다졌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있었던 마물 소동을 보고 있었는데 굉장하던걸.”


시몬이 그런 말을 꺼냈습니다.

아마 마물한테서 유리아를 구했던 때를 말하는 거겠죠.


“부끄럽네요.”

“……알레어한테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야.”

“아, 알레어 짱은 강하니까요.”


연달아 칭찬을 받으니 조금 낯간지러웠지만, 저는 자랑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시몬이 대단하다고 느꼈던 건 그 점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 그게 아니라. 확실히 알레어의 실력도 굉장했지만 남들 보는 앞에서 그렇게 대놓고 꽁냥대도 돼?”

“그, 그거였나요…….”


릴리 님이 몸을 움츠렸습니다.

잠깐, 릴리 님.

저랑 꽁냥대는 게 불만이라는 거예요?


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내심 불만을 느끼는 제 마음은 아랑곳없이, 시몬은 제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알레어는 릴리를 좋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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