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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소녀들의 정원

01. 바우어 여학원


“……알레어, 일어나. 아침이야.”

“으……응……?”


제 목소리와 한없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깊은 잠 속에 잠겨있던 제 의식을 끌어올렸습니다.

눈을 뜨니 보브컷을 한 앳된 소녀가 보입니다.


“……으응…… 메이……? 왜 그렇게 쪼끄매진 건가요……? 우리는 오늘부터 고등학생이잖아요……?”

“……잠꼬대하지 말고,”


휙, 날아오는 배게를 반사적으로 낚아챘습니다.

졸린 눈을 부비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지금 저는 제 방 침대 위에 있나 봅니다.

다시금 목소리를 건넨 사람을 보자 앳된 소녀의 모습은 간데없고, 레이 어머니와 꼭 닮은 미디엄 보브컷을 한, 레이 어머니와 전혀 닮지 않은 무뚝뚝한 표정을 가진 예쁜 소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흐아암……. 좋은 아침이에요, 메이.”

“……좋은 아침. 아침 식사를 할 거니까 불러오라고 레이 엄마가 그랬어.”

“금방 갈아입고 가겠어요.”

“……응.”


제가 옷장 앞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자 메이는 방을 나갔습니다.

흰색을 기조로 디자인된 사랑스러우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교복에 팔을 집어넣었습니다.

바우어에서도 유명한 가게인 블루메의 주도로 만들어진 세일러복이라는 교복입니다. 교복칼라 부분이 리본 타이로 되어 있는 세련된 옷입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서는 거울을 보면서 머리카락을 빗었습니다.

한때는 클레어 어머니를 흉내내서 세로 롤 헤어스타일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아침에 하기엔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습니다.

그 헤어스타일은 메이드를 거느리던 시절의 어머니니까 할 수 있었던 거고,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 제가 하기엔 너무 과한 스타일입니다.

직접 헤어스타일을 세팅하게 된 이후엔 평범한 롱헤어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이었네요. 메이가 이 방에 들어오다니.”


훨씬 어렸을 땐 메이와 저는 같은 방을 썼었습니다.

중등부로 올라갈 때쯤 메이가 자기 방을 갖고 싶어 해서 창고 대용으로 쓰던 방을 정리한 다음 메이의 방으로 삼았습니다.

자연스레 저도 저만의 방을 갖게 됐지만 원래는 둘이서 같이 쓰던 어린이용 방입니다.

제가 창고용 방을 써도 상관없었지만 메이는 자기가 꺼낸 말이니까 자기가 옮기겠다면서 고집스레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런 경위로 각자 자신의 방을 갖게 된 우리 자매지만 방이 나뉘게 된 이후로는 예전만큼은 진득하게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메이는 초등부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 왠지 모르게 가족들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도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저는 왠지 그게 서운했습니다.


『메이도 그럴 나이인 거야.』


레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웃으셨지만 그렇게 치면 지금도 변함없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저는 아직도 어린애라는 뜻일까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고 헤어 세팅을 마친 다음 부엌으로 나왔습니다.


“알레어, 안녕.”

“좋은 아침이에요, 알레어.”

“…….”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님들. 메이도 다시 한번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


엄마들은 두 분이서 함께 식탁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메이는 미리 자기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지켜보는 중입니다.


저는 어머님이 두 분 계십니다.

한 분은 금색으로 반짝이는 롱 헤어를 뒤로 묶어 올렸고, 당당한 분위기가 아름다운 여성—— 클레어 어머님.

다른 한 분은 미디엄 롱 정도 길이로 기른 흑발을 머리핀으로 고정한 헤어스타일에 애교가 느껴지는 얼굴을 가진 여성—— 레이 어머님.

두 분은 같은 여성이지만 결혼해서, 메이와 저를 양녀로 맞아 지금까지 키워주신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모님입니다.


클레어 어머님은 지금도 여전히 요리가 서투른 모양이지만 요리를 제외하면 다른 집안일은 오히려 레이 어머님보다 뛰어납니다.

두 분은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가사를 분담하고 있습니다.


“다들 자리에 앉았지?”

“응.”

“……응.”

“준비 됐나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합장하며 외치고 나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빵.

우유.

참깨 드레싱을 뿌린 샐러드.

베이컨 에그.

딸기.


이런 구성입니다.

한때는 삿살 화산의 분화 때문에 왕국에 식량난이 닥쳤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옛날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아침 식사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의 메뉴에는 레이 엄마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이 베이컨 에그.

정성 들여 구워낸 거겠죠,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베이컨 위 한 가운데에 반숙 계란 프라이가 예쁘게 놓여 있습니다.

저도 요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직 레이 어머니에 비하면 멀었어요.


“둘 다 드디어 고등학교에 가게 됐군요. 감개무량해요.”

“그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나 쪼끄맸는데.”


클레어 어머니의 말에 레이 어머니도 맞장구를 치며 손바닥을 펴서 우리 키보다 한층 낮은 곳을 가리켰습니다.

메이도 저도 이제 열다섯 살이 됐는데 여전히 어머님들 눈에는 어린애인 모양입니다.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줘.”

“맞아요. 우리도 이제 어엿한 레이디예요.”


메이와 함께 항의했지만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어머님들은 한층 더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역효과였던 모양이에요.


“두 사람 다 의젓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말아줬으면 싶네요.”

“그러게. 천천히 컸으면 좋겠어.”

“……엄마들이 우리 나이 때에는 벌써 구세의 십걸이라고 불리고 있었잖아.”


——구세의 십걸.


우리 눈에는 그냥 평범한 성인 여성으로밖에 안 보이는 어머님들이지만 사실은 굉장한 분들입니다.

옛날 일이라 이제 저는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한때 세계의 존망을 건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 싸움 속에서 세계를 구해낸, 그야말로 전설 같은 업적을 실제로 이루어 낸 사람이 바로 어머님들입니다.

……사실 그 10명 중에는 메이와 제 이름도 포함되어 있지만요.


“그런 일도 있었죠.”

“지금은 그냥 눈앞의 일에도 급급한 일반인이지.”


그러면서 서로를 마주보며 방긋 웃는 두 분의 모습은 역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만 보였습니다.

물론 딸 입장에선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멋진 부모님이긴 합니다만.


“자, 그건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요. 둘 다 정말 여학원에 다니는 걸로 괜찮은 건가요? 두 사람의 성적이면 왕립학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데요.”

“우리로선 기쁜 일이긴 한데.”


이미 여러 번 반복했던 대화를 또 꺼내셨습니다.


“확실히 왕립 학교에 진학하는 건 명예로운 일이지만, 저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 경영하는 학교에서 배우고 싶었는 걸요.”

“……메이는…… 알레어가 있는 곳에 다니고 싶으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늘부터 입학하게 될 학교는 옛날에 어머님들이 다녔던 바우어 왕립 학교가 아닙니다.


——사립 바우어 여학원 고등부.


우리가 진학할 학교입니다.


통칭 『학원』이라고 불리는 이 학교는 몇 년 전에 클레어 어머니가 창립한 사립학교입니다.

이름 그대로 여성들만 있는 여학교고, 꽤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왕립학교에 비하면 선진적 학문을 배울 수 있는 학교입니다.

제가 진학할 곳으로 이 이상 가는 학교는 없죠.

이사장을 맡고 있는 클레어 어머니뿐만 아니라, 레이 어머니도 이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긴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어요. 그래도 당부하겠지만 학원에선 공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거 알죠?”

“……벌써 백만 번은 들었어.”

“그러니까요.”

“아하하.”


클레어 어머니의 걱정도 이해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걸 이제 슬슬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학문을 갈고 닦으러 학교에 가는 겁니다.

어머님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놀러 가는 게 아니에요.


“……잘 먹었습니다. 먼저 갈게.”


메이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황급히 마지막으로 남은 딸기를 입에 넣었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메이. 같이 가요.”

“우리도 슬슬 나가도록 하죠, 레이.”

“응. 그럼 나중에 보자, 메이, 알레어. 클레어? 잘 다녀오라고 키스해줘.”

“어차피 같은 직장이면서.”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키스를 나누는 어머님들—— 결혼한지도 1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두 분한테 권태기란 인연이 없는 단어입니다.

훈훈한 눈으로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메이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왜 그래요, 메이?”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메이와 저는 집에서 나왔습니다.

현관을 나와 몇 걸음쯤 걸어갔을 때, 저는 고개를 돌려 우리 집을 바라봤습니다.

학원생활이 시작되면 이제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 집과도 이별입니다.

저는 현관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다녀올게요, 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좋은 날씨네요. 입학식에 안성맞춤인 최고의 날이에요.”

“……그러게.”


부드러운 햇빛을 만끽하면서 기지개를 쭉 피며 씩씩하게 말했지만 메이는 딴 생각에 빠진 모양입니다.


“뭐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는 건가요? 메이.”

“……굳이 말하자면 앞으로의 학원 생활에 대해서일까.”


메이는 한숨 섞인 말투로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거요? 메이의 성적이라면 그다지 불안해할만한 건 없을 것 같은데.”

“……공부는 그렇겠지.”


굳이 따지자면 공부보단 몸을 움직이는 쪽을 더 선호하는 나와는 다르게, 메이는 아주 머리가 명석하고 공부도 잘 합니다.

제 예상대로 그녀의 고민은 공부가 아니라 다른 쪽인가 봅니다.


“그럼 뭐가 신경 쓰이는 건가요?”

“……룸메이트.”

“아아, 그렇군요.”


학원도 왕립 학교와 마찬가지로 전 학생 기숙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왕립 학교만큼 학원 예산이 풍족한 건 아니라서 2인실이 아니라 4인실 방입니다만, 2인실이든 4인실이든 상관없이 룸메이트가 누구일지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메이는 남들한테 오해를 사기 쉬우니까요.”

“……알레어가 너무 알기 쉬운 편이라고 생각해.”


메이는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입니다.

게다가 절세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미소녀라서 여자애들한테 질투나 시기를 사곤 했습니다.

클레어 어머니는 “메이는 레이랑 닮았네요”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헤어스타일 빼곤 클레어 어머니랑 더 닮은 것 같습니다.


“뭐, 어떻게든 될 거예요.”

“……알레어의 그런 점은 참 부러워.”

“비꼬는 건가요?”

“……후후, 진심이야.”


그러면서 메이는 쿡쿡 웃었습니다.


“메이가 웃는 모습 오랜만에 봤어요.”

“……기분 탓 아닐까?”

“메이는 더 많이 웃어야 해요. 미인이니까요.”

“……알레어가 그런 말을 하면 놀리는 걸로밖에 안 들려.”


학원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저는 오랜만에 메이와 즐겁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첫 출발이 좋은 느낌입니다.


이제부터 시작될 학원생활에도 분명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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