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Artists Posts Import Register

Content

2021년 쯔음에 썻던 글입니다. 대학생시절에 빨간두건을 소재로 두건을 사랑하는 늑대가 모든  걸 줬으나 빨간두건은 그걸 다 버렸다는 내용을 구상했던 적이 있어요. 그걸 사냥꾼의 시점으로 한 번 작성해 본 겁니다. 비록 글이지만 잔인합니다!! 고어주의!!! 어설프게 쓴 글 예쁘게 읽어주세용ㅎㅎ>3<)


"신부님. 사냥을 하는 것이 뭐가 나쁘단 겁니까. 사냥은 죄가 아닙니다. 저는 악마를 잡았을 뿐입니다. 사람탈을 뒤집어 쓴 악마! 그 새끼의 배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자 뱃속에 담고 있던 자신의 죄와 악을 다 쏟아내고 죽더군요. 여기 온 몸에 묻은건 제 피가 아닌 사탄의 피입니다. 사탄의 더러운 악행입니다. 예, 저도 압니다. 전 신부님께 이렇게 불쑥 찾아왔지만 자꾸 변명만 하고 있단 사실을요. 아까부터 계속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보면 저에게도 아직 양심이란 것이 남아있나 봅니다. 입은 바싹 말라 침조차 삼키기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식은 땀이 나 내 눈을 찌르고 있지만 두 손에 꽉 쥐고 있는걸 놓고 닦을 수 없습니다. 아직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 저는 두렵습니다. 제 손에 들고 있는 이 생명이 사라질까봐 전 두렵습니다. 손이 떨리고 긴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부님, 전 이게 단순한 긴장감과 손떨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비탄에 잠겨 있습니다. 신부님 하느님. 제 감정을 잠시나마 토해낼 시간을 주십시오.

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 오두막에서 홀로 외롭게 살고 있는 사냥꾼입니다. 뒤뜰에 있는 작은 텃밭과 조금 녹이 슨 장총 몇자루가 제 재산의 전부입니다. 그나마 있던 친구인 소중한 개 렉스마저 10년 전에 잃은 뒤로 아무와도 만나지 않으며 살고 있죠. 더는 소개할 내용도 없습니다. 전 그저 하루하루 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살아온, 이따금 하는 사냥이 스릴의 전부인 삶입니다.

언제였을까요 몇 년 전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이라고 말하지만 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날은 무척 따뜻한 봄날이였습니다. 전 노루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고 노루는 이런 따사로운 날씨에 정신이 팔려 풀떼기나 꽃 따위를 열심히 뜯고 있었죠. 꽃가루가 사방에 흩날려 코를 간지럽히는게 마치 요정이 장난을 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였을까요. 그 장난 때문에 그만 재채기가 심하게 나와 내 위치가 발각되었고 그걸 본 노루가 도망쳤습니다. 나는 얼른 쫒아갔죠. 한참을 달렸을까 저는 어느 한 꽃이 만개한 들판에서 지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때 조금 멀리서 검은 털이 살랑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까 놓친 노루가 멍청하게 또 정신 팔렸나 싶어 숨을 죽이며 다시 다가갔지만 그것은 노루가 아니였습니다. 늑대였죠. 늑대는 커다란 손에 아기민들레 따위를 엮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풀숲에 몸을 숙이고 있던 절 발견한 늑대는 도망치기는커녕 손을 흔들며 인사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경계를 풀지 않고 천천히 접근한 저에게 그는 살랑거리는 꼬리로 응답했습니다. 함께 놀자고 한 늑대는 작은 야생화를 꺾어 제 옷 주머니에 찔러 넣었고 당황하는 저에게 예뻐 보이는 꽃을 한아름 꺾으며 내 손에 쥐어주는 귀여운 재롱을 떨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우리 둘은 그렇게 들판에서 질리도록 놀았습니다. 이 느낌은 마치 오래된 추억에 푹 빠져버린 감각. 그의 꼬질거리는 털과 튀어나온 주둥이, 살랑대는 꼬리가 렉스를 떠오르게 만들어주었죠. 전 무척 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늑대는 친구가 되었고 외로움과 무료함에 찌들었던 제 삶은 점점 그의 색으로 물들어갔습니다. 잘난 것 없는 검은색으로, 그의 아름다운 붉은 눈빛 색으로.

그는 멋도 없고 예쁘지도 않았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서툴러 항상 바보 같은 애교만 부립니다. 하지만 전 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실없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는 큰 귀를 쫑긋거리면서 절 바라보며 경청해주었죠. 그럴 때마다 조금씩 반짝거린 눈빛을 전 잊을 수 없습니다. 살면서 보석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마치 정말 보석 같았습니다. 그가 주둥이를 제 입에 갖다 대며 냄새를 맡고 몸을 비비면 전 그의 몸을 쓰다듬었고 그럴 때마다 그는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 순간 느껴지는 평온한 심장이 뛰는 소리, 작지만 조금씩 울리는 그 느낌이 보잘 것 없지만 그게 저에겐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아기민들레가 피었다 사라졌을까 전 점점 그 늑대에게 빠져들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목동 이야기처럼 우리 둘은 순수했고 서로 사랑했습니다. 아니,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증명했고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느님도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아들이 이 땅을 밟으며 인류에게 전하며 다닌 것이 사랑입니다. 신부님께서도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지 저보다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사랑만큼 잔인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파한 예수도 마지막엔 사람들 손에 의해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랑이란 것은 마치 퍼즐과도 같습니다. 서로 사랑의 조각을 갖고 맞추어야 비로소 사랑이 완성됩니다. 어느 한쪽도 사랑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국 그 사랑은 홀로 무너지고 맙니다. 홀로 남은 사랑은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날카로운 칼날로 바뀌어 가슴을 후벼 팝니다. 심장을 관통하고 피가 쏟아져 몸이 잠기게 되고 그 피에 숨이 막혀 익사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또다시 몇 번의 계절이 흘러서 봄이 찾아왔습니다. 땅을 짓누르던 눈들이 자취를 감추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따위가 얼굴을 드러낼 무렵이 되자 동면하던 짐승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도 하나 둘 저마나 소풍을 가거나 먼 친척들을 만나러 길을 나서기 시작했죠. 따뜻한 날씨가 오늘따라 마음에 들어 집주변을 돌아다니자 나무 옆에서 익숙한 검은 털이 보였습니다. 늑대였습니다. 손에 아기민들레를 들고 있는걸 보니 근처 꽃밭에서 놀다 나에게 오던 길이였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제가 인사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도 그는 절 눈치 채지 못한 채 나무에게 의존해 몸을 숨기며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늑대의 시선을 따라가자 마을과 숲을 가로지르는 길 위에 한 소녀가 보였습니다. 초록빛 풀숲에서 빨간 두건을 둘러서인지 마치 나무에 매달린 열매, 너무 일찍 익어버린 사과가 연상되었습니다. 이런 봄날에 놀러 다니는 건 어린이들도 예외가 아니라 바구니를 들고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늑대가 소풍 같은걸 가고 싶어 한다고 착각한 저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가 빨간 두건을 쓴 소녀를 보며 여러 상상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제가 그의 손을 잡고 거칠게라도 끌고 갔다면 조금 달라졌을까요. 아니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잔인한 괴물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천천히 늑대와 제 숨통을 조이고 있단 사실을 그 땐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늑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주 만나는 편이였지만 그 주기가 일정하지 않아 이런 일도 으레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무심함이 지금의 절 이렇게 괴롭힐 줄은 진심으로 몰랐습니다. 며칠 후 늑대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몸 여기저기엔 상처와 풀잎투성이였고 마치 어딘가에서 실컷 구르다 온 것 같았습니다. 늑대는 빨간 두건을 쓴 소녀에게 예쁜 장미를 꺾어주려고 가시에 찔렸고 맛있는 고기를 주기 위해 사냥을 하다 여기저기 다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맙다는 단 한마디 없이 그저 선물만 받고 가버렸다고. 가엾습니다. 너무나도 불쌍하고 가련했지만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늑대의 눈이 저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저기 다치고 피가 조금씩 고여 있는 잔상처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의 눈빛만은 순수함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소녀는 그의 호의를 다 무시했는데도 그의 눈은 아직도 그렇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아닌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단 사실을. 저의 사랑 따위는 이제 그의 안중에 없단 사실을. 제 마음이 갈라지는 걸 느낀 나는 순간 소녀를 향한 분노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만 늑대에게 화를 쏟아냈습니다. 그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내 말을 듣더니 사과의 말과 함께 풀숲으로 사라졌습니다. 전 마음 한 구석에서 늑대를 잡고 싶은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를 잡고 쓰다듬으며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러지 못했습니다. 전 그가 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도 똑같이 실연을 겪어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보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기적입니다. 속 좁고 제 생각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그에게 그러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했어야 합니다. 그런 잡년은 잊어버리고 나와 함께 해야 한다는 유치한 말이라도 하며 그를 붙잡았어야 했었습니다!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전 바로 후회했습니다. 당연한 소리입니다. 그의 마음을 후벼 판 사실이 절 점점 괴롭혀 왔고 제 목을 도끼날로 서서히 그어버리는 소름끼치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그를 찾아야 했습니다. 전 그가 아직도 빨간 두건을 쓴 소녀한테 빠져있지 않을까 해서 그 소녀를 처음 보았던 길목으로 갔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바구니를 들고 있었으니 자주 다니던 길목일거라 나름 추리를 하고 찾아갔죠. 제가 정확했습니다. 그 근처로 가자 익숙한 냄새가 났습니다. 사냥의 냄새, 피비린내. 더러운 냄새가 제 코를 찔렀습니다. 다른 사냥꾼이 근처에서 짐승을 잡은 걸 수도 있는데, 왜 제 마음은 이렇게 불안에 떨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 불안한 마음은 현실이 되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길 위에 늑대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전 그를 보자마자 바로 뛰어가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전에 생긴 상처를 제외하고는 다친 곳은 없어 보였습니다. 조금 안심한 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늑대의 두 눈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두 눈이 뽑혀 공허한 구멍만 뚫려 있었고 주인을 잃은 눈 근육과 시신경의 일부가 왈칵거리며 피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늑대는 고통으로 인한 쇼크 때문에 기절한 채 숨만 간신히 헐떡거리고 있었습니다. 전 그를 안아 올려 집으로 돌아가 그의 두 눈을 지혈해 주었죠. 너무 놀랐습니다. 다시 떠올려도 숨이 막힙니다. 끔찍했습니다. 이 순간이 악몽이길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가 정신을 차리며 몸을 움직였습니다. 경계를 하며 코를 벌름거리다 제 집 냄새가 나자 이내 안심하며 제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렸습니다. 지혈은 했지만 뚫린 두 구멍이 진득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무척 흉했습니다. 전 그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그도 나에게 의지하려는 듯 살짝 기댔습니다. 그는 웃고 있었습니다. 아프다고 울면서 눈물도 쏟지 못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그는 웃고 있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저 황홀한 표정.. 어떻게 된 거냐는 내 질문에 대답해준 늑대의 말은 날 미쳐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빨간 두건을 쓴 소녀가 자신은 빨간색을 좋아하니 보석 같은 늑대의 두 눈을 달라고 말한 겁니다. 늑대는 소녀에게 받은 주머니칼로 눈을 도려냈고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고 합니다. 미쳤습니다. 그녀는 미쳤습니다. 순수한 건지 잔인한 건지 구분이 안가는 그 소녀는 저에겐 그저 요술을 부리는 사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늑대는 화를 내지 말라고 절 끌어 안아주며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그 소녀에게 어떠한 짓도 하지 말아달라고 그가 부탁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존재가 제일 증오하는 것을 감싸고 두둔하니 저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신부님. 성경에서는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답을 알고 계십니까?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아무리 신부님의 말씀을 들어도 절대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모를 테니까요.

전 그를 끌어안은 뒤 지친 그를 위해 먹을 것을 조금 주고 잠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 가슴팍에 자기 주둥이를 비비고 잠이 들었습니다. 상처 입은 아기민들레. 고통을 이기지 못해 거의 쓰러져가는 아기민들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전 그의 이불을 고쳐 덮어준 뒤 소파 위에 누웠습니다. 충격으로 인해 이리저리 뒤척였습니다. 잡념과 고통, 아픔. 모든 것이 저를 괴롭혀서 전 새벽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죠. 그 때 잠을 자면 안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깨어 있어야 했었습니다. 그것이 늑대와의 마지막이 될 거란 것을 알았더라면 전 절대 자지 않았을 겁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전 먼저 늑대의 상태를 보기 위해 바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침대 위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느낌이 왔습니다. 늑대는 후각이 좋아 그 길목까진 특별한 장애물도 없으니 쉽게 갈 수 있었던 겁니다. 급하게 장총을 등에 메고 출발했습니다. 미친 듯이 뛰면서 머리는 오만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꾸만 떠오르는 걱정과 불안, 긴장이 달리는 제 숨을 턱까지 차오르게 만들었지만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 심장이 터져 죽던지 말든지 그저 달렸습니다. 어제처럼 길목엔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너무 늦은 것 같아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미친 듯이 떨렸습니다. 길목에 늑대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빨간 두건을 쓴 소녀가 무언가를 들고 있었습니다. 웃고 있는 소녀를 뒤로 한 채 늑대 앞으로 급하게 달려갔지만 늑대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갈비뼈가 열려 있었고 피가 연못처럼 그의 가슴 안으로 고여 있었습니다. 그의 앞으로 연인이 포개어지듯 엎어진 전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를 꼭 안으며 소리 내어 우는 순간 작은 고동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직 뛰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뛰는 걸 느낀 저는 몸을 들어 그를 살펴봤습니다. 오만가지 장기들이 그의 몸으로 만든 피연못에 잠겨있었지만 어렴풋이 무엇인지는 구분이 가능했습니다. 난 뭔가가 빠져 있단 것을 느꼈습니다. 심장. 심장이 없었습니다. 심장이 있어야 될 자리엔 그저 고인 피와 잘린 핏줄 뿐 이였습니다. 전 고개를 들어 소녀에게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소녀의 손에는 심장이 조금씩 요동치며 뛰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봐도 늑대의 심장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 확인 차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물어봤습니다. 늑대가 소녀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 달라 부탁한 것을 잊지 않았기에 전 마지막 남은 이성을 최대한 부여잡을 수 있었습니다. 소녀가 이 미쳐버린 상황을 전부 설명해 줬습니다. 제가 오기 전 소녀는 늑대에게 사랑이란 것의 실물이 보고 싶으니 날 사랑하면 심장이란 걸 보여 달라며 재촉했고 늑대는 그 부탁을 그대로 들어준 것입니다. 신부님, 이것이 사랑입니까. 이것이 사랑이라면 전 무엇을 위해 그를 사랑했고 그는 무엇 때문에 소녀를 사랑한 것 인가요! 전 등에 메고 있던 장총을 꺼내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겨누어 배를 터트려버렸습니다. 소녀의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며 폭죽 불똥마냥 여기저기로 날아갔습니다. 저에게 있는 사랑은 그 순간 전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증오의 날로 바뀌어 제 마음을 쑤시고 그녀의 배를 뚫어버린 겁니다. 소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관심 없었습니다. 전 바로 심장을 쥐고 있는 소녀의 손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도록 우악스럽게 잡았습니다. 그러고나서 늑대의 심장을 작은 민들레를 드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들었습니다. 뛰고 있습니다. 손으로 느껴지는 심박수가 마치 늑대가 저에게 말을 걸려고 간신히 애를 쓰는 것 같아 절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부님,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전 그렇게 악몽 속에 잠겨버린 채 발을 질질 끌며 이 교회로 찾아오게 된 겁니다. 제 손에 쥐고 있는 이 심장의 박동 수가 점점 느려지고 있습니다. 괴롭습니다, 신부님. 제가 느낀 긴장감과 두려움은 늑대가 마지막으로 부탁한, 그녀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말아달라는 그 작은 소원을 어긴 것에 대한 괴로움과 비탄이었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고해성사가 아닙니다. 그저 이 잔인한 사건의 배경을 말하고자, 누군가는 저를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주절거린 겁니다. 동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이해만 해주십시오. 이를 누군가한테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악마가 뒤집어 쓴 순수한 소녀의 인두겁을 믿지 말아야 된다는 사실을, 늑대를 향한 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리고 이 말만큼은 다시 해야겠습니다. 사랑은 잔인합니다. 아름답고 순수하지만 제대로 맞물리지 않으면 결국 고통만을 줍니다. 신부님께서는 절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

사냥꾼이 말을 마치자 그가 신주단지마냥 쥐고 있던 늑대의 심장이 숨을 토해내듯이 조금 작아지더니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사냥꾼은 앞으로 엎어지더니 숨이 끊어졌다. 그의 심장도 함께 멈춘 것이겠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숨이 끊어진 것을 보면 그 둘은 천생연분인 것이 틀림없다.

Comments

Anonymous

늑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