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미수 (Pixiv Fanbox)
Published:
2020-03-16 10:00:03
Imported: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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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번역은 "와타오시 번역"의 협력으로 실현되었습니다.고마워요, "와타오시 번역"
교황 성하와 도로테아의 회담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아침.
나는 어찌어찌 카게무샤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여전히 자잘한 실수들을 연발하고 있긴 해도, 점차 이 생활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식사에는 영 익숙해지질 않네.”
교황 성하는 정령교회의 수장이라는 입장에 있는데도, 몹시 검소한 식사였다.
딱딱한 빵과 몇 종류의 콩을 삶은 싱거운 맛의 포타쥬, 삶은 달걀에 약간의 과일, 지극히 심플하다.
혁명 직후에 클레어 님과 내가 먹었던 빈곤한 식생활과 크게 다를게 없었다.
정령교회가 딱히 육식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 이것도 수행의 일환인 걸까.
“그럼, 독이 있는지 시식하겠습니다.”
시중을 드는 여성이 그렇게 말하며 식사에 손을 뻗었다.
안 그래도 검소하기 그지없는 식사인데 더 입맛이 떨어지게 만드는 게 바로 이거다.
교황 성하는 세계적인 VIP이고, 지금은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니까 모든 식사는 독이 있는지 검사를 거치고 있다.
수속성 해독 마법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국에는 칸타렐라라는 전례가 있다.
세인 님 암살 기도 때 쓰였던 구형 칸타렐라는 내가 해독할 수 있지만, 루이가 썼었던 신형이나 혹시 더 개량을 거친 새로운 칸타렐라가 쓰일 가능성도 있다.
만능이라고 여겨지는 마법이라는 기술도 한계는 있는 것이다.
독이 있는지 맛을 봐주는 사람은 내 곁에서 시중을 들어주는 수녀 분이다.
이름은 상드린 씨라고 한다.
그녀는 교황 성하의 열렬한 신봉자인 모양이라 상당히 어렸을 때부터 이 일을 해왔다나.
겉보기에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수녀고, 나랑 비슷한 키를 가진 분이다.
상냥한 눈을 가진, 사람 좋아 보이는 스무 살쯤 되는 언니다.
조금 마른 체형인 건 역시 이런 검소한 식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교회 관계자 중에서 뚱뚱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상 없습니다. 드셔주세요.”
상드린 씨는 식사를 한입씩 맛본 뒤, 이상 없음을 알리며 다시 내 곁을 지켰다.
“고마워요, 상드린.”
내가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상드린 씨는 이것도 제 일이니까요, 라고 말하며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포타주를 입에 넣으면서 나는 살짝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드린 씨는 지금 나와 교황 성하가 바뀐 상태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녀는 성하를 위해서 오늘도 목숨을 걸고 독이 있는지를 맛보고 있었다.
만약에 그녀가 독으로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그녀가 구한 사람은 자신이 경애하는 교황 성하가 아니라 새빨간 타인인 것이다.
그 사실이 정말 죄송스러웠다.
“먼저 오늘은 리세 님이 면회를 하러 오신다고 합니다. 사흘 후에 있을 회담의 마지막 협의를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대역이라는 점도 있어서, 내가 직접 만나는 사람은 몹시 한정되어 있다.
사무적인 보고는 거의 대부분 리세 님이 해주고 있었다.
리세 님은 매우 유능한 분이셨다.
회담의 절차 등, 교황으로서 필요한 각종 정보를 비롯해, 진짜 교황 성하와 클레어 님, 그리고 메이와 알레어의 소식도 부지런히 전해주셨다.
나는 그 덕분에 안심하고 카게무샤 일을 할 수 있었다.
오늘의 공무 예정을 들으면서 식사를 마쳤다.
메뉴의 바리에이션을 늘려달라는 제안이라도 해볼까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으러 이동했다.
오늘도 또다시 이 무거운 법의를 입어야만 하는 건가, 하고 조금 우울해하면서.
“교황 성하, 조금 살이 찌셨네요.”
상드린 씨의 말에 찔끔했다.
얼굴만 보면 쏙 빼닮았지만, 역시 체형 등 세세한 부분은 차이가 있겠지.
“제국의 식재료가 좋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교황 성하에게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되니까, 분명 제국도 최고의 식재료로 제공하고 있겠죠.”
고마운 일이네요, 하고 상드린 씨가 혼자서 납득해 주셨다.
위험해, 위험해.
“등 뒤의 단추를 잠그겠습니다.”
상드린 씨가 등 뒤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좋지만, 이 법의는 혼자서는 못 입는 거네.
지퍼라면 또 모를까, 등 뒤쪽에 단추라니 손이 닿지 않는다.
블루메를 통해서 지퍼를 발매해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등 뒤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옥체에 손을 댈 수 있는 영광을 내려주신 걸 감사드립니다.”
상드린 씨는 교황인 내 몸에 손을 댈 때, 신에게 감사의 말을 입에 올리면서 로자리오에 입을 맞추는 버릇이 있다.
아마 지금도 그녀의 버릇이 나온 거겠지.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평소보다 시간이 걸렸다.
무슨 일일까, 하고 내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을 때, 갑자기 등 뒤로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읏……?!”
뒤를 돌아보려고 했던 그 순간, 목이 졸리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뭔가 가는 끈 같은 것이 내 목을 칭칭 감고 있는 것 같았다.
“상드린……씨……어째……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금방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어떻게 해야 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를 생각했다.
의문을 해결하는 건 나중이다.
지금은 일단 내 목숨부터 건지고 봐야.
나는 등 뒤쪽을 향해 위력을 최대한 낮춘 돌덩이를 발사해서 상드린 씨를 날려버렸다.
상드린 씨는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다.
“하아……읏……하아……!”
“…….”
숨을 헐떡이면서도 나는 방심하지 않고 상드린 씨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온화한 미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빛이 없는 멍한 눈을 한 채, 손에는 로자리오를 쥐고 있었다.
아마도 로자리오의 끈으로 목을 조른 것 같았다.
평범한 끈이었다면 그냥 끊어졌을 테니, 저건 아마 교살을 목적으로 만든 특제품일 게 분명했다.
잘 보니 로자리오가 수상한 빛을 내고 있었다.
저건 혹시…… 마도구……?
“…….”
내 의문에는 아랑곳 없이, 상드린 씨가 끈을 쥐고서 돌진해 왔다.
그다지 빠른 발걸음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는 운동치인 진짜 교황 성하를 상정하고서 이런 암살 수단을 골랐겠지.
그러나,
“엿차…….”
나는 그녀의 오른쪽 손목을 잡아채고서 관절을 비틀어 올렸다.
산드린 씨는 저항하긴 했지만, 금방 끈을 쥔 손을 풀었다.
“수면.”
나는 이어서 산드린 씨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서 수속성 수면 마법을 강하게 걸었다.
평민운동 때 클레어 님을 잠재웠던 마법이다.
내 수면 마법은 강한 마력을 지닌 클레어 님조차 혼절시킬 정도의 위력이다.
평범한 수녀인 상드린 씨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후우…….”
일단은 궁지를 벗어난 것 같았다.
누군가 사람을 불러와야…… 상드린 씨의 로자리오를 주워 들면서 그렇게 생각했을 때,
“교황 성하!”
난폭하게 문이 열리면서 사람이 뛰쳐들어왔다.
“리세 님…….”
“무사하신가요?! 뭔가 커다란 소리가 울렸습니다만?!”
리세 님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아마도 전력으로 달려온 거겠지.
“피가……!”
“아아, 날려버렸을 때 베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내 목 주위에 상처가 남은 모양이다.
“이건…… 상드린이?”
“네에. 하지만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아직 살아있나요……?”
“네, 의식을 잃었을 뿐입니다.”
사정을 듣기도 전에, 상드린 씨의 목숨을 뺐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빨갛게 상처가……. 미안해요, 무기와 암기류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로자리오에 수작을 부렸을 줄은.”
리세 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치료 마법을 걸어주셨다.
나는 어라, 하고 생각했다.
손 안에 쥐고 있었던 로자리오를 그대로 법의 안에 집어넣었다.
아직 결론은 이르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리세 님에 이어서 교회 관계자들이 방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이건……!”
“교황 성하가 상처를……?!”
“상드린이 범인이었던 건가…….”
어쩐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으…….”
병사들한테 포위된 상태에서 상드린 씨가 눈을 떴다.
“저는…… 대체…….”
“상드린, 교황 성하 살해 혐의로 자네를 체포한다.”
“?! 그런…… 저는 그런 무서운 짓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상드린 씨는 결백을 호소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가 실행범이라는 사실은 내가 직접 몸으로 겪었다.
“이 상황이 돼서도 그런 소리를…… 재판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처형해버리도록 하죠.”
리세 님이 몹시도 흉흉한 발언을 했다.
“기다려주세요. 그녀에겐 아직 여러 가지로 듣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런 태평한……. 그녀의 범행이라는 건 이미 명백한 사실. 여기선 빠르게——.”
“괜찮아요, 저는.”
나는 리세 님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말했다.
그러나,
“즉결 처분해야 합니다!”
리세 님은 나에게 처단할 것을 주장했다.
어쩔 수 없지.
“교황인 제 말을 듣지 못하겠다는 건가요?”
나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리세 님과 일대일 상황이라면 아무런 효과도 없는 말이겠지만, 다행이도 이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다.
“……알겠습니다. 성하의 결단에 따르겠습니다.”
리세 님을 필두로 사람들이 엎드렸다.
우와~ 이거 엄청 못돼 먹은 느낌이잖아, 나.
이후, 상드린 씨는 교회의 취조를 받았다.
그녀의 말로는 내가 옷을 갈아입는 걸 돕던 도중부터 기억이 없다고 한다.
엄청난 자책감에 휩싸여 있다는데,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자신이 교황 성하를 해하려고 했다는 객관적 사실이 눈앞에 닥치자, 자신을 처형해 달라고 소망하고 있다고 한다.
취조를 할 때는 반드시 교회 사람과 바우어 사람을 함께 동석시켰다.
그녀의 단독 범행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입막음 당할 걸 막기 위해서다.
내가 이리저리 손을 써줬다는 사실을 들은 상드린 씨는, 내가 면회를 하러 갔을 때,
“당신에게 위해를 끼쳤던 저 같은 사람에게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주실 수 있는 건가요?”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상드린, 당신이니까 그런 거예요.”
이렇게 말해봤더니 그녀는 몹시 감격하면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교황 성하, 뭔가 플래그를 세워버린 거라면 미안해.
나는 그녀의 처우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배후 관계가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도록 단단히 말해놨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것도 조사해 놔야겠네.”
나는 리세 님에게는 비밀로 상드린 씨의 로자리오를 바우어쪽 관계자한테 넘긴 다음, 해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