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Artists Posts Import Register

Content

연극부가 연기할 작품은 『아모르의 천칭』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바우어 왕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아모르의 시』를 소재로 삼아 각본을 맡은 학생이 새롭게 각색한 오리지널 연극입니다.

무녀 앙리에트를 둘러싼 남자들의 싸움과 그로 인해 어지러워진 나라, 그리고 천칭으로 벌이는 신부 쟁탈전 부분은 아모르의 시와 동일하지만 연극에 어울리게 연애 요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나라에서 유력한 정치가인 오귀스트와 알랭이 무녀 앙리에트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앙리에트에겐 내가 더 잘 어울려! 재산도, 지위도, 외모도, 뭐 하나 빠짐없이 내가 더 뛰어나지 않나!”


키가 큰 남자라고 전해지는 남자 역—— 알랭을 연기하는 배우가 또렷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에 비해 리디가 연기하는 오귀스트는 갈등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확실히 나는 당신만큼 뛰어난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진정 그녀를 원하는 사람은 바로 나야!”


리디는 전에 오귀스트를 연기하는데 망설임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리디가 연기한 오귀스트는 이 장면에서도 당당하게 키가 큰 남자와 정면으로 맞섰지만 지금 그녀가 연기하는 모습에는 어딘가 그늘이 느껴졌습니다.

저로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오귀스트는 뭔가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장면이 달라지고 정령교 대신전으로 무대가 바뀌었습니다.


“신이시여……. 고백합니다.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제가 계속 무녀로 있는 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 걸까요. 사랑 같은 세속적인 감정에 빠져 번민하는 이런 제가…….”


루이즈가 연기하는 앙리에트도 예전만큼 사랑에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루이즈가 연기했을 땐 대사 그대로 사랑을 저속한 감정으로 여기며 부정하는 걸로 느껴졌지만, 지금은 신앙과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아, 신이시여. 저에게.”

“나에게.”

“제게.”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소서!”””


초반 도입부가 끝났습니다.


“자, 우리가 출연할 차례예요, 릴리 님.”

“네, 네엡……!”

“도중에 막막할 때면 저한테 의지해 주세요. 애드리브로 어떻게든 넘기겠어요.”

“부, 부탁할게요.”


마지막으로 릴리 님의 눈을 응시하면서 손을 힘주어 마주 잡은 다음, 각자 무대 오른편과 왼편으로 찢어졌습니다.

저는 무대 끄트머리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 타이밍에 맞춰 무대 위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사랑…… 사랑인가. 알랭 님과 오귀스트 님마저 사랑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치에 손을 놓고 있어. 사랑이란 그 정도로 사람을 번민하게 만드는 거겠지. 이해해. 나도 지금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모르고 있으니까.”


장면은 교회.

스타트부터 제법 긴 대사였지만 매끄러운 발음으로 잘 소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극에 어울리는 과장된 동작과 손짓을 섞으면서 이어지는 대사를 읊었습니다.


“언니!”


무대 왼편에서 릴리 님이 나타났습니다.


“소피아…… 기다리고 있었어.”

“무슨 일인가요, 언니? 새삼 이런 곳으로 부르시다니. 오늘은 예배를 드리는 날이 아니잖아요?”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예배를 드리러 온 게 아니야. 너에게…… 청혼하러 온 거야!”


무릎을 꿇고서 릴리 님의 손을 쥐었습니다.

릴리 님은 짐짓 깜짝 놀란 시늉을 하면서 제 손을 뿌리쳤습니다.


“농담이라면 그만하세요, 언니! 신께서 보는 앞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농담하는 게 아니야, 소피아. 나는 진심이야.”

“아아……. 언니가 이성을 잃으셨어……!”


제가 연기하는 조제핀은 릴리 님이 연기하는 소피아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 역할입니다.

같은 여성이자 피가 이어진 자매에게 사랑에 빠진 조제핀의 마음은 당시의 가치관으로 비추어봤을 때 두말할 것 없는 타락이자 죄입니다.

우리가 연기하는 역할은 어지러워진 국내 질서를 상징하는 요소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사실 연극 각본 스토리라인을 보면 전승으로 전해지는 원본에 비해 훨씬 나은 형태로 개선된 거지만요.


“나는 제정신이야.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는 거야, 소피아. 사랑스러운 그대.”

“언니, 이제 그만해 주세요. 신께서 지켜보고 계신다고요.”

“개의치 않아! 네 마음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상관없어!”

“언니, 대체 어떻게 되신 건가요. 제 마음은 원래부터 당신 곁에 함께 있었는데.”


슬픈 듯이 고개를 푹 숙이며 릴리 님은 그대로 무대 끝을 향해 달려가 퇴장했습니다.


“기다려 줘, 소피아!”


저도 그 뒤를 쫓아 무대 위에서 퇴장했습니다.


“둘 다 수고했어. 느낌 아주 좋았어!”

“다음 출연까지 잠깐 휴식을 취해줘.”


무대 뒤로 가자 리디와 루이즈가 저희를 맞이했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이어서 출연할 차례입니다.


“메이한테서 연락 온 게 있었나요?”

“응. 방금 막 마물들을 토벌했다는 연락이 있었어. 경비 담당자한테 보고할 게 있는지 이쪽으로 오는 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대.”

“그렇군요…….”

“둘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며 아쉬워하더라.”

“메, 메이 짱…….”


메이는 속마음을 표정에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메이는 메이 나름대로 이번 무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한 성과를 내팽개치게 되더라도 메이는 학원의 안전을 지키는 걸 우선한 겁니다.

릴리 님에게 배역을 양보하면서까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게 메이의 헌신에 보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거야.”

“……그러네요.”

“메, 메이 짱 몫까지 열심히 하겠어요!”

“바로 그 자세야, 둘 다.”


어두워지려는 분위기를 리디가 말끔하게 걷어내 줬습니다.

그 말이 맞아요.

무대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 그게 틀림없이 메이에게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자, 중반부야.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가자.”

“네에.”

“네, 넷.”


◆◇◆◇◆


긴급 대역으로 투입된 릴리 님의 노력 덕에 무대는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중반부를 마치고 이야기는 드디어 끝부분으로 접어듭니다.


“사랑스러운 사람, 하지만 언니와 맺어질 수는 없어.”


저번에 릴리 님과 단둘이 연습했던 장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연기하는 조제핀의 마음을 릴리 님이 연기하는 소피아가 거절하는 장면입니다.


“어째서? 나와 너는 연인보다도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는데.”

“깊이가 지나쳐요. 이 심연은 분명 언니를 지옥으로 떨어트리고 말 거예요.”

“설령 그렇다 해도 상관없어! 너와 함께라면 어디까지든 떨어질 수 있어!”


저는 기묘한 고양감을 느꼈습니다.

예전에 함께 연습했을 때를 넘어서는 고양감입니다.

그건 마치 제가 릴리 님에게 품은 연심과 제가 연기하는 조제핀의 마음이 한데 얽히며 공명하는 듯한 신기한 감각이었습니다.


“미안해요, 언니. 그래도 저는…….”

“소피아…….”


사랑을 거절하는 말에, 연기인 걸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어째서…… 어째서인가요……!


“나는…… 나는 너를 결코 포기하지 않아!”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릴리 님의 표정도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제, 제가 그만 대본에 없는 대사를……!)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조제핀은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게 됩니다.

대본에선 이 장면부터 조제핀은 사랑을 친애의 감정으로 승화시켜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자매 사이로 돌아오게 된다는 흐름입니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오기 전에 자기만 믿으라는 둥, 그런 소리를 릴리 님한테 했던 주제에 정작 대형 사고를 친 건 저였습니다.

예상조차 하지 못한 사태에 머릿속은 혼란에 빠졌고, 판단력도 흐려집니다.

눈앞의 릴리 님도 눈에 띄게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이대로라면 연극이 엉망으로 끝날 거야—— 갑작스러운 소리가 들렸던 건 그런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건……?)

어디선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대본에는 없었던 연주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음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릴리 님. 찬송가 12번 6소절부터.)

(메이 짱?! ……알겠어요!)


음악에 맞춰 릴리 님이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무대에 흐르는 음악은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마치 정령들이 연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신비로운 음색이었습니다.

아마도 메이가 풍속성 마법을 사용해 연주하는 거겠죠.

신비한 음색 위에 릴리 님의 한없이 투명한 노랫소리가 얹히자, 이 세상의 음악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천상의 선율로 탈바꿈했습니다.

그 노래는 연정도, 집착도, 모든 걸 깨끗하게 씻겨주는 것 같았습니다.


“언니, 이게 제 대답이에요. 저는 하느님과 함께 있어요. 언니와는 함께 갈 수 없어요.”


성녀—— 한때 릴리 님을 수식하던 이명을 떠올리게 하는 미소를 지으며 릴리 님은 등을 돌려 천천히 무대에서 퇴장했습니다.

우두커니 뒤에 남겨진 저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만 남기고 조명이 꺼졌고, 이윽고 저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도 시간차를 두고 빛이 꺼졌습니다.


(……알레어도 퇴장해.)

(네, 네에!)


이렇게 제가 저지른 실수는 어떻게든 수습했고, 무사히 연극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


이후는 별 탈 없이 진행되어 마침내 연극은 피날레를 맞이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그대를 끝까지 지킬 것을 맹세한다……!”


리디가 아모르의 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사를 루이즈에게 바치면서 무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커튼이 내려가자 커튼 너머 관객석에서 성대한 박수 소리가 전해져옵니다.


“자, 다들. 커튼콜이야. 일렬로 서자.”


일반적인 커튼콜과는 다르게 대도구나 소도구를 맡은 학생들도 함께 무대 위에 나란히 섰습니다.

다시 커튼이 올라가자 모두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또 한 번 커다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여러분 오늘은 연극부의 연극을 관람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부장인 리디가 대표로 인사했습니다.


“약간 트러블이 있기도 했지만 무사히 마지막까지 작품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믿음직스러운 우리 부원들 정말로 고마워!”


리디의 말에 부원들이 쑥스럽게 웃습니다.

말이 끝나자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급한 부탁에도 도우러 와준 봉사활동부 네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너희가 없었더라면 무대를 끝까지 해낼 수 없었어. 고마워!”


우리 봉사활동부한테도 감사를 표했습니다.

인사에 맞춰 박수가 울려 퍼집니다.


“마지막으로…… 루이즈.”

“어?”


갑작스러운 호명에 당황하는 루이즈.

게다가 미리 짜둔 것처럼 조명이 켜지고, 리디와 루이즈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쳤습니다.


“무대에서 한 고백은 연기였지만 나는 정말로 너를 사랑해. 내 사랑을 받아줄 수 있을까.”

“뭐어어……?!”


리디는 이 자리를 빌려 루이즈한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전개에 관객들의 흥분도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어때?”

“저기, 그게…… 깜짝 놀랐지만…….”

“놀랐지만?”

“나로 괜찮다면…… 부디.”


기어드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 하지만 마지막 말은 분명한 긍정이었습니다.

오늘 울려 퍼진 것 중에서도 최고로 성대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고마워. 나는 지금 이곳에서 당신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맹세할게.”

“어휴…… 바보야.”


장난스럽게 말하는 리디와 토라진 것처럼 대답하는 루이즈의 모습에 관객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자 그럼, 조그만 깜짝 이벤트도 있었지만 이걸로 진짜 정말로 연극부의 공연은 끝입니다. 다음은 관현악부의 연주도 이어질 예정이니까 관객 여러분은 꼭 이어지는 공연도 즐겨주세요. 오늘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리디가 고개를 숙이는 것과 동시에 우리도 일제히 허리 숙여 인사했습니다.

커다란 박수와 함께 커튼이 내리고, 우리의 연극은 이번에야말로 막을 내렸습니다.

Comments

No comments found for thi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