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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문화제 날이 밝았습니다.

잠깐 걱정했던 마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날씨 운도 따랐는지 화창한 하늘. 오늘은 문화제에 안성맞춤인 절호의 날이라고 말해도 좋겠죠.


문화제는 성황이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많은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전이문이 운용되기 시작한 덕분인지 나 제국과 아파라치아에서 온 걸로 보이는 손님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습니다.

그 기술을 두고 클레어 어머니는 “세상의 거리를 좁히는 기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저도 전적으로 그 말에 동감입니다.

레이 어머니는 왠지 경계심을 드러내고 계셨지만, 저는 편리한 기술은 팍팍 쓰면 되는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문화제가 사람들로 붐비는 건 겉으로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반에도 많은 손님들이 방문해 주셨습니다.


“로스트비프 샌드위치 다 됐어—!”

“8번 테이블 주문 기다립니다!”

“손님 돌아가십니다—!”

“감사합니다!”


주방도 홀도 쉴 틈 없이 바빠서, 넓다고 하기 힘든 가게 안에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쪽에는 마시멜로 이쪽은 캔디네. 저 테이블에는 드라이 후르츠를 적당히 담아서 내가.”

“오케이—!”


시몬의 지시를 받은 반 애들이 디저트를 나눠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시몬과 아이들이 만든 포스터의 홍보 효과입니다.

가게에 입점할 때 포스터를 보고 왔다고 말하면 디저트 하나를 서비스로 주자고 시몬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함께 포스터를 그린 반 친구 중 한 명이 친근하게 시몬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시몬의 아이디어가 대성공이잖아. 역시 상회 따님!”

“디저트로 뭘 주는지는 적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조언한 건 너잖아. 쿠키든 뭐든 하나로 미리 정해뒀다면 분명히 금방 재고가 동났을 거야. 땡큐.”

“에이 뭘.”


한때는 반 애들과 서먹서먹했던 시몬도 이제는 허물없는 사이처럼 보입니다.


“시몬, 이걸 5번 테이블에. 올 때 2번 테이블이랑 1번 테이블 식기 좀 정리해 줘요.”

“알겠어.”

“메이는 8번 테이블 주문 부탁해요. 지금 들어온 손님도 주문 대기 중이니까 될 수 있으면 그쪽도 같이.”

“……오케이.”

“리, 릴리는 뭘 하면 될까요?!”

“릴리 님은 주방 쪽 보조를 부탁해도 될까요? 아무래도 사람 손이 부족한 모양이에요.”

“아, 알겠어요!”


저는 뭘 하고 있냐면, 직접 플로어에서 웨이트리스 일도 하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둘러보면서 반 애들한테 지시를 내리는 사령탑 역할을 겸임하고 있었습니다.

일에 집중하는 건 즐거워요.

몸을 움직이며 뇌를 풀가동 시키고 있으면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해도 되니까요.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다는 건 여전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겠죠.)


저는 더욱더 업무에 집중하고자 뺨을 찰싹 두드린 다음, 검지로 입꼬리를 쭉 당겨 올린 후 홀로 돌아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손님!”


◆◇◆◇◆


“알레어, 메이~. 이쪽은 우리가 나중에 할 테니까 연극부를 도와주러 다녀와~. 이제 슬슬 시간 됐지~?”

“아, 그러네요. 고마워요.”

“……고마워.”


반 친구 중 한 명이 상기시켜 준 덕에, 저는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메이와 함께 스태프 룸으로 들어와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럼 릴리 님, 시몬, 우리는 다녀올게요.”

“……다녀올게.”

“여, 열심히 하세요……!”

“우리도 나중에 빨리 갈 테니까!”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교실을 나왔습니다.

준비 시간까지 고려하면 무대 상영 시간까지 여유가 얼마 없어서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서둘렀습니다.

극장은 평소엔 실내체육관으로 사용하는 건물을 빌려서 무대로 쓰게 됐습니다.


“……?”

“왜 그래요, 메이?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 거예요.”


극장에 거의 다 왔을 때 메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잠깐 화장실. 금방 따라갈게.”

“알겠어요.”


저는 거기서 메이와 잠깐 헤어져 먼저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알레어 늦었어—!”

“미안해요, 우리 반 카페 일이 길어지는 바람에.”

“이유는 나중에! 자자, 어서 갈아입어!”

“네에.”


연극부 사람들과는 벌써 많이 친해졌습니다.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동료입니다.

저는 또 하나 소중한 인연이 생겼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어라, 메이는?”

“화장실에 갔다 온대요. 금방 뛰어올 거예요.”

“그래, 그렇다면야 뭐.”


그때, 짝짝 손뼉을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다들 잠깐 하던 걸 멈추고 주목해 봐.”


사람들의 주목을 모은 사람은 리디였습니다.


“오늘 이때까지 준비하느라 수고했어.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우리는 최고의 팀이야. 우선 그 점에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

“오글거려— 리디.”

“이런 상황에서까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긴—.”


부원들이 하나같이 매정하게 받아치고 있지만 저것도 쑥스러워서 저러는 겁니다.

모두가 앞장서서 연극부를 이끌어가는 리디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연극부원으로서도…… 나 개인적으로도 이번 연극을 무조건 성공시키고 싶어. 이제는 오직 마지막까지 해낼 뿐—— 그치?”


그러면서 리디는 루이즈를 향해 뜨거운 열기가 담긴 시선을 보냈습니다.

루이즈는 그 눈빛을 받으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지만, 저는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시선 속에 다른 감정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단순히 연극의 성공을 바라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구체적으로 그게 뭔지까진 잘 알 수 없었습니다만 이 사실을 머릿속 한구석에 담아두기로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대역을 맡아준 알레어랑…… 아직 안 온 것 같지만 메이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정말로 고마워.”


리디는 우리 봉사활동부한테도 감사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감사는 받을 수 없어요.”

“?”


제 말에 리디는 살짝 놀란 듯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는 씩씩하게 웃으면서,


“모든 건 연극을 성공시키고 나서. 그렇죠, 부장?”

“옳소—.”

“리디는 마음부터 앞선다니깐.”

“……후후, 그러네. 그 말이 맞아.”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리디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럼 감사 인사는 나중에 즐기기로 하자. 다들 이제는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할 뿐이야. 후회 없는 연극을 펼쳐 보자!”

“네!”

“오오—!”

“해보자고—!”


사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지나치게 긴장한 부원도 없어 보이고, 이러면 연극도 잘 해낼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메이가 조금 늦네요?”


◆◇◆◇◆


“느, 늦었어요……!”

“나랑 릴리도 서둘러 달려왔어…… 어? 무슨 일 있어?”


한발 늦게 온 릴리 님과 시몬이 대기실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나 봅니다.


“메이가 오질 않아요.”

“네, 네에에?!”


연극 시작까지 5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슬아슬한 시간까지도 메이는 극장에 나타날 기미가 없습니다.

상연 직전에 일어난 트러블에 부장인 리디의 안색이 창백해졌습니다.


“대체 어째서…….”

“잘 모르겠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다면 메이가 연락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메이는 텔레파시를 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위력도 상당해서 학원 안에만 있으면 저랑 연락을 주고받는 것쯤이야 손쉬울 겁니다.


“부장!”

“! 메이는 찾았어?!”

“틀렸어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아요!”

“그럴 수가…….”


리디는 넋이 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봉사부에 의뢰했을 때 리디도 말했듯이, 메이가 맡은 역할은 단역이긴 해도 결코 극에서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역입니다.

메이가 없다는 건 연극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사태입니다.


(……알레어, 미안.)

“메이?! 다들 잠깐 조용히! 메이한테서 텔레파시가 왔어요! 메이, 채널을 확장해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들려줘요.”


제 외침에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메이, 당신 지금 어디예요?!”

(……학원 뒷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 마물과 싸우고 있어.)

“마물이라고요?!”


이때 제 놀란 목소리는 숫제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을 겁니다.


(……전에 율리아를 습격한 뱀처럼 생긴 마물 있지? 아마 그 녀석의 한 패가 땅속에 숨어 있었나 봐. 동족으로 보이는 마물이…… 약 스무 마리.)

“맙소사…….”


그만한 마물이 학원 안에 침입한다면 지금 문화제를 즐길 때가 아닙니다.


(……마물은 메이가 어떻게든 할게. 하지만 연극 시간에는 못 맞출 것 같아.)

“저도 가겠어요!”

(안 돼!)


메이는 드물게도 단호한 말투로 저를 막아 세웠습니다.


(……알레어까지 여기 오면 정말로 연극을 상연할 수 없게 돼.)

“메이가 못 오면 마찬가지잖아요! 당신이 맡은 역은 대신할 사람이——.”

(……릴리 님한테 대역을 부탁해 봐.)

“?!”


메이의 제안은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리, 릴리가요?!”

(……릴리 님은 대본을 전부 외우고 있을 거야.)

“그, 그치만 대본을 외우고 있어도 연기는…….”

(……알레어랑 같이 연습도 했었지? 릴리 님이라면 걱정 없어.)


아무래도 메이는 그날 밤 릴리 님과 제가 둘이 함께 연기를 펼치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나 봅니다.


“그, 그래도…….”

“나도 꼭 좀 부탁할게, 릴리 님.”

“리디 씨…….”

“이제 막이 오를 때까지 몇 분조차 남지 않았어. 더 이상은 방법이 없어……!”

“으, 으으으…….”


릴리 님은 몹시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원래부터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분입니다. 저랑 연습했던 밤처럼 보는 눈이 없을 때라면 또 모를까, 본격적으로 무대 위에 올라서 연기를 할 자신이 없는 거겠죠.


(……릴리 님, 부탁이야. 문화제는 메이가 지킬게. 릴리 님은 알레어랑 무사히 연극을 마쳐줘. 둘 다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분명 후회가 남을 거야.)

“메, 메이 짱…….”


메이의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메이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할 릴리 님이 아니었습니다.


“릴리 님, 같이 해봐요.”

“아, 알레어 짱까지…….”

“릴리 님이 하지 않으면 연극 자체가 중지돼요. 밑져야 본전이라고 하잖아요. 일단 부딪혀보는 거예요.”


저는 릴리 님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눈에 힘을 담아 똑바로 바라봤습니다.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릴리 님은 소심한 분이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요.


그리고 제 믿음은 근거 없는 믿음이 아니었나 봅니다.

릴리 님의 눈동자는 한동안 망설임으로 흔들렸지만, 마침내 결심이 깃든 눈빛으로 빛났습니다.


“……아, 알겠어요. 제가 대역을 맡겠어요……!”

“의상! 출연 순서까지 서둘러 의상을 수선해!”

“벌써 하고 있어!”

“알레어랑 릴리 님은 출연 직전까지 여기서 최종 확인! 다른 사람들은 시작하자! 개막이야!”


리디가 서둘러 척척 지시를 내리자 부원들이 황급히 움직였습니다.


“아, 알레어 짱…….”

“괜찮아요. 어떻게든 될 거예요.”


저도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릴리 님이 제 안의 불안을 깨닫지 못하도록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침내 연극의 막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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