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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어요.”

“흐응—.”


이튿날 점심.

시몬과 함께 교내 안뜰 벤치에 앉아 어제 메이한테 들었던 말을 얘기했습니다.

정작 시몬은 학식으로 산 샌드위치만 먹으면서 그다지 관심 없는 태도로 고개만 끄떡였지만요.

평소라면 학생 식당에서 점심을 먹겠지만, 오늘은 유독 식당이 붐벼서 안뜰로 나왔습니다.


릴리 님과 메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문화제 개최 전 마물 토벌 작업에 참가한 참이라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딱히 아무 생각도 안 드려나. 나는 어려운 건 잘 모르겠는걸.”


그러면서 시몬은 샌드위치 하나를 더 꺼내 덥석 입에 물었습니다.


“저도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마음에 걸리거든요.”

“어째서?”

“……약함에 관련된 말이었기 때문일까요.”

“이해하기 힘든 소리를 하는구나.”


시몬은 우물우물 샌드위치를 씹으면서 대답하고 있지만 그래도 얘기는 끝까지 들어줄 모양입니다.


“저, 스스로한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헤에? 완벽 초인처럼 보이는 알레어한테도 그런 게 있구나?”

“놀리지 말아주세요.”

“놀리는 거 아니야. 그냥 의외였을 뿐이지. 그래서? 그 결점이 뭔데?”

“……저는 타인의 약함이나 고통에 둔감한 편이라고 느껴요.”


자기 결점에 대해 얘기하는 건 조금 부끄러웠지만, 먼저 얘기를 꺼낸 건 제 쪽입니다.

저는 숨김없이 얘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몬은 레이 어머니에게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다고 말한 적 있잖아요?”

“그랬지.”

“제 입장에서 보기에는 그건 그냥 애먼 화풀이로밖에 안 보인단 말이죠.”

“완전 대놓고 말하네.”

“혹시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할게요.”

“아냐, 상관없어.”


시몬은 세 번째 샌드위치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알레어가 하는 말이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해. 내가 겪은 현실이 어떻든 간에 내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면 확실히 애먼 화풀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걸.”

“그쵸?”

“이럴 때 본인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진짜 알레어다워…….”

“앗, 미안해요.”

“아니 상관은 없긴 한데.”


무심코 조건반사적으로 맞장구를 치고 만 저를 보면서 시몬이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점이 알레어의 결점이라는 뜻이야?”

“네. 상대의 약함이나 지금 느끼는 고통에 공감하기가 힘들고, 그걸 논리로 재단해 버리는 둔감함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구나. 하지만 뭐,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 무슨 뜻이에요?”


저는 시몬한테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시몬은 입 속에 든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네 번째 샌드위치 쪽으로 손을 뻗고는 말했습니다.


“있지, 알레어는 태생부터 강자인 거야.”

“그렇지는…….”

“그치만 생각해 봐. 부모님은 그 유명한 클레어 님과 레이 님. 자매는 쿼드캐스터인 메이, 스스로도 검술의 정점인 검신—— 이 정도로 호화롭게 타고날 수가 있어?”

“그건…….”


저는 피의 저주 탓에 고통받았던 과거를 얘기하려다가 도중에 멈췄습니다.

시몬이 그걸 모를 리가 없습니다.

구세의 십걸에 대한 일화이기도 해서, 메이와 제 출신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니까요.


참고로 피의 저주란 메이와 제가 한때 가지고 있었던 특이체질로, 우리의 피에 닿은 대상이 마법석으로 변해버리는 저주였습니다.

피에 저주에 관해선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단 지금은 뒤로 미뤄두죠.


시몬이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축복받았다는 거겠죠.


“애초에 알레어는 스스로한테 불가능한 일 때문에 속상하게 느껴본 적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지나친 말이에요. 저도 불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잔뜩 있는데요? 예를 들어 공부나 마법에선 메이를 이길 수 없어요.”

“그러네, 방금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어. 하지만 알레어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느끼고 있잖아?”

“?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나한텐 아무것도 없다, 나는 어떠한 사람도 될 수 없다, 알레어는 그런 식으로 고민해 본 적은 없지 않아?”


그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확실히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곡인 모양이네.”

“네에, 아무래도요.”

“공부나 마법은 잘 못해도 나에겐 검술이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으려나. 짐작이지만 만약 검을 휘두를 수 없게 되더라도 알레어는 그게 뭐가 됐든 간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


예리한 지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지금 저한텐 검이 있습니다.

검에서만큼은 누구한테도—— 지금이라면 릴리 님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설령 커다란 부상을 입어서 검을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한 가지 길에서 끝을 봤다는 자신감은 평생에 걸쳐 저를 지탱해 주겠죠.

그 자신감만 있다면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혹시 대답하기 어렵다면 그냥 흘려넘겨줬으면 하는데요——.”

“뭔데?”

“시몬한테는 있나요? 자기한테는 아무것도 없다, 자신은 어떠한 사람도 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고민해 본 적이.”

“진지하게 그런 소리를 한다는 점이 무섭단 말이지…….”

“그 말은?”


시몬은 다음 샌드위치를 입으로 옮기고선 잠시 동안 우물거리며 음식을 삼킨 다음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 고민, 안 하는 사람이 훨씬 드물거든? 우리 나이대 애들은 다들 그런 나약함을 속에 품고 있는 법이라구.”

“…….”


시몬의 말은 저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습니다.


“그런 의미에선 확실히 알레어의 그런 점은 결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의외로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어떤 부분이 말인가요?”


플라텔 상회가 최근 신상품으로 출시한 팩에 담긴 우유를 마시면서 시몬이 웃었습니다.


“그 둔감함을 말하는 거야. 이건 어디까지나 예시지만, 알레어가 말하는 사람의 약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은 룸메이트 중에선 아마 릴리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릴리라면 거기에 공감한 나머지 어디까지든 끝없이 옆에 있어주려고 할 것 같거든.”

“그건 좋은 거 아닌가요?”


저는 시몬이 하는 말의 의도를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꼭 그렇지도 않아. 고민이란 건 때로는 공감만 해줄 게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 같은 건 무시하고 단호하게 나서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단호하게…….”

“맞아.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알레어는 그런 게 가능하잖아? 상대방의 입장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악의 없이 과감하게 쳐낼 건 쳐낼 수 있잖아.”


그건…… 과연 장점일까요.


“어려워요.”

“그렇지, 쉽지 않아. 하지만 뭐 어때. 고민할 수 있는 만큼 행복한 거야. 나 같은 일반인한텐 애초부터 선택의 여지 따위 없으니까.”

“그 말은?”

“약함이 뭐고 강함이란 뭔지 같은 걸 고민하기 이전에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치우는 데만 급급하다는 뜻. 학급 카페에서 웨이트리스? 나한테 접객이라니 무리라고!”

“……후후후.”


마지막에 여봐라는 듯이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은 아마 시몬 나름의 상냥함이겠죠.

제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일부러 익살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는 거니까요.

본인한테 말하면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시몬의 이런 점은 레이 어머니랑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고민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시몬. 저도 우선은 지나치게 고민하지 말고 연극부를 돕는 일에 집중하도록 하겠어요.”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알레어. 우리 반 출품작도 잊지 말라고. 우리도 돕겠지만 어디까지나 반장은 너니까.”

“네에, 물론이에요.”


메이의 말 때문에 술렁이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됐습니다.

여전히 몇몇 부분은 이해하지 못한 상태지만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 걸로 치죠.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 말곤 없는 거군요.


“시몬은 훌륭한 여성이네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시몬에게 건네자마자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민거리 탓에 식욕이 없어서 점심은 주스로 때웠어요.


“그렇게 칭찬해 봤자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나 참…… 자, 이거 먹어.”

“샌드위치가 아직도 있어요?!”


시몬한테 받은 샌드위치는 레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샌드위치와 맞먹을 정도로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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