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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부가 상연할 작품은 왕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사랑을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아모르의 시군요.”

“알레어는 아는구나. 하긴 그것도 그런가. 클레어 님이랑 레이 님에게도 소중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인걸.”

“네에.”


바우어에선 매년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아모르의 제사라는 이벤트가 열립니다.

그 행사의 기원이라 일컬어지는 전승이 바로 이 아모르의 시입니다.

아모르의 제사는 일종의 신부 쟁탈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축제.

신이 하사했다는 전설을 가진 이야기 속 천칭이 지금도 실제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참가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걸고 공물을 바쳐서 마음의 무게를 서로 겨룹니다.


제 어머님인 레이 어머니도 옛날에 클레어 어머니를 두고 스스 왕국의 왕녀, 마나리아 스스 님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레이 어머니가 승리해서 해피엔딩—— 으로 끝날 듯했지만, 사실 마나리아 님의 진짜 목적은 클레어 어머니가 아니라 레이 어머니였다는 사실이 발각.

레이 어머니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 드는 마나리아 님을 향해, 클레어 어머니가 처음으로 레이 어머니에 대한 독점욕을 드러냈다—— 이건 관계자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클레어 어머니 앞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 막무가내로 꾸짖고 보시기 때문에 프랑소와 가문에서 이 화제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그럼 리디랑 루이즈가 이야기의 주인공 둘을 각각 맡는 건가요?”

“응. 루이즈가 무녀, 내가 무녀와 맺어지게 되는 키가 작은 남자를 연기할 거야.”


아모르의 시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떤 키가 큰 남자와 키가 작은 남자가 한 명의 무녀를 사랑했습니다.

두 남자는 나라에서 힘을 가진 유력자라, 서로 자기가 더 무녀를 사랑한다며 다퉜습니다.

남자들이 사랑에 몰두하는 동안 나라는 점점 더 어지러워졌습니다.

남자들이 싸움을 멈추도록 무녀가 신에게 빌자, 신은 천칭 하나를 내려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칭에 공물을 바쳐라. 천칭이 가리키는 자가 너의 남편 될 자이다.


신이 내린 천칭의 판결을 통해 키가 작은 남자가 무녀의 남편이 되었고, 실연당한 키가 큰 남자는 훌륭한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키가 큰 남자 역할은 어떻게 할 건가요?”

“그 역할은 다른 부원이 연기할 예정이야. 실제 키는 나보다 작아서 키높이 부츠를 신고 무대 위에 오르게 되겠지만.”

“배역에 대한 준비는 확실하네요. 그래서 메이랑 저는 어떤 역을 맡으면 되죠?”

“먼저 이 대본부터 읽어줘.”


그러면서 리디는 메이와 저에게 대본을 한 권씩 건넸습니다.

제본까지 마친 대본은 두께는 얇아도 정성 들여 만든 티가 났습니다.

펼쳐 보니 아마 우리가 맡게 될 역할이라 짐작되는 대사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맡을 역할은 전반부의 하이라이트. 나라가 혼란에 빠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 나오는 연인들이야.”

“호오오…… 잠깐만요, 설마.”

“응. 나도 설마하니 두 사람이 이 정도로 연기할 배역과 딱 맞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정말 면목 없긴 한데…… 아무튼 그렇게 됐어.”

“…….”


키가 큰 남자와 키가 작은 남자의 다툼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바우어에선 성적 문란함이 극에 달해 질서가 흐트러졌다고 전해집니다.

즉, 이번 연극에서 우리가 연기할 역할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 친자매를 연기해 줬으면 해.”


◆◇◆◇◆


“뭔가 일이 묘하게 되었네요.”

“……그러게.”


연극부 연습에 참가한 지 이틀째.

오늘도 메이와 저는 방과 후에 연극부 부실로 찾아가, 부원들과 함께 연극 연습에 힘쓰는 중입니다.

릴리 님과 시몬도 가끔 도와주러 오지만 둘 다 반에서 하는 출품작 준비로도 바빠서 그리 자주 오지는 못했습니다.

원래는 반장인 제가 해야 할 일들 중 몇 가지를 두 사람이 분담해서 대신해 주는 상황입니다.


연습에 참가한 다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학원 연극부는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모양입니다.

대도구나 소도구 등, 무대 뒤를 맡은 부원들까지 다 포함해도 스무 명이 안 되지 않을까요.

이러니 결원이 생겨도 보충할 여유가 없었겠구나, 하고 절로 수긍이 갔습니다.


“메이는 괜찮은가요? 그…… 좀 독특한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요.”

“……메이는 신경 안 써. 알레어는?”

“저도 그다지요. 연기는 어디까지나 연기인걸요.”

“……그래.”


메이는 물병을 기울여 컵에 물을 따르더니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어라?

기분 탓인지 어째 심기가 불편한 것 같기도.


“있잖아요, 메이. 당신——.”

“수고했어, 알레어 짱, 메이 짱.”

“……수고했어, 루이즈.”

“수고 많았어요.”


메이한테 뭐라고 말을 걸려고 한 타이밍에 루이즈가 다가왔습니다.

마침 자기가 출연하는 장면을 마친 건지 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적응했어?”

“네, 덕분에요. 다른 부원분들도 잘 대해주시니까요.”

“……다들 친절해.”

“그치? 자칫하면 상연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던 타이밍에 도와주러 나타난 도우미인걸. 모두 환영하고 있어.”


그러면서 루이즈는 밝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가식적으로 꾸며낸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배우는 일반 사람들보다 표정이 더 뚜렷해서 그런지 아주 매력적으로 비쳤습니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연극은 검술이랑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네요.”

“어머, 그래?”

“네. 발을 딛는 법이나 무게 중심을 옮기는 법, 팔다리의 움직임 등, 검술에서 중요시하는 포인트 중 겹치는 게 여럿 있어서 아주 흥미로워요.”

“그랬구나. 나는 검술 쪽은 문외한이지만 알레어 짱은 연극 초보자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움직임이 세련됐어. 보나 마나 댄스도 꽤 잘하지?”

“네에, 뭐.”

“역시! 이번 작품에는 춤을 추는 장면이 없지만 괜찮다면 다른 작품을 상연할 때도 도우미로 출연하는 걸 고려해 줬으면 싶을 정도야.”

“새, 생각은 해볼게요.”


상상 이상으로 열띤 권유를 받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살짝 움츠러들었습니다.


“……메이는 고전 중이야. 원래부터 몸 쓰는 건 서투르고.”

“어머? 그렇지도 않은데? 메이 짱은 몸을 움직이는 건 아직 좀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표정 연기는 놀랄 정도로 뛰어나. 평소에 그런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루이즈는 메이한테도 아낌없이 칭찬을 퍼부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메이는 무대 위에 올라가면 깜짝 놀랄 정도로 다양한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은 어디 갔는지, 해바라기처럼 미소 짓고, 비가 내리듯이 울고, 햇볕이 내리쬐듯이 기쁨을 드러냅니다.

평소엔 볼 수 없었던 의외의 일면에 몇 번씩이나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그렇게나 능숙하게 표정을 바꿀 수 있으면서 왜 항상 무표정인 거예요?”

“……필요가 없으니까.”

“어머, 아까워라.”

“……그런 것보다 문화제 날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겠어?”

“그건…… 리디랑 나한테 달린 문제네.”


화제를 돌리려는 듯 묻는 메이의 말에 루이즈는 난처한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완벽하잖아요.”

“……메이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 하지만 아직 멀었어. 리디도 나도 주역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어.”


메이와 제가 꾸밈없이 솔직한 감상을 말했지만, 루이즈는 고민거리가 있는 것처럼 눈썹을 찌푸렸습니다.


“그게 무슨 뜻——.”

“야— 루이즈! 슬슬 나갈 차례야!”

“지금 갈게! 미안, 이제 가야 해.”

“네, 네에.”

“아 맞다, 깜빡했어. 학원 주변에서 예전보다 마물이 빈번하게 출몰한다고 하니까 연습 때문에 시간이 늦어졌을 땐 꼭 여럿이서 같이 기숙사로 가.”

“……알겠어.”

“그럼 간다. 둘 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루이즈는 다시 무대로 돌아갔습니다.


“마물…… 마음에 안 드네요. 하필 이런 시기에.”

“……문화제 개최 전에는 주변을 한번 싹 청소할 거라고 들었어.”

“요즘 마물은 교활하니까 말이죠…… 괜찮을까요.”

“……메이한테도 마물 토벌 참가 의뢰가 왔어.”

“네?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왔어요.”

“……알레어는 반장 일로 바쁘기도 하고, 이번에는 마법 적성이 높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발됐대.”


조금 석연치 않은 느낌도 들지만 뭐, 메이가 참가한다면야 안심이에요.

그건 그렇고——.


“있잖아요, 메이.”

“……왜?”

“배역을 소화한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글쎄? 연극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하지만——.”

“하지만?”


메이는 텅 빈 물컵을 탁자 위에 올린 다음 수건을 접으면서 뭔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뗐지만.


“……아무것도 아니야. 아마 알레어는 이해 못 할 거야.”

“왜 그렇게 단정 짓는 거예요.”

“……그야.”


이어지는 메이의 한마디는 제 가슴에 깊숙이 박혔습니다.


——그야 알레어는 약함을 이유로 고민해 본 적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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